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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립미술관 《수상한 소리번역가》

리뷰 감각으로 소통하는 수상한 연구실

  • 최창희 감성정책연구소 소장
  • 등록일 2022-10-26
  • 조회수1031

인터뷰

  • 관람객 체험 모습. 다양한 색으로 그린, 같은 듯 다른 사각형 모양의 그림들이 디귿 자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그 앞 단상에 선 소녀가 헤드폰을 쓰고 망원경으로 그림들을 보고 있다.

    이다희 작가의 ‘음악에 모양이 있다면’ 섹션, 관람객의 체험 모습

1952년 8월 29일, 뉴욕의 한 야외 콘서트홀에서 예술의 역사를 뒤흔든 연주가 있었다. 초연을 선보였던 그 날, 존 케이지의 <4분 33초>는 바람 소리와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청중의 기침 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곡 전체가 완성되었다. 소리와 소음이 예술이 되던 그 연주는 예술의 역사에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소리와 소음이 예술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예술은 예술이 아닌 것이 예술이 되는” 아방가르드 이론을 설명하는 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예술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우리가 예술로 이해하고 예술로 판단한다는 것은 또한 무엇일까?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2022년 8월 30일, 수원에 수상한 소리번역가의 연구실이 생겼다. “소리를 번역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물음은 연구실에 초대된 우리에게 주어진 연구 주제다. 연구실은 이다희 작가의 ‘음악에 모양이 있다면’, 김채린과 서혜민 예술가의 ‘들을 수 있는 조각’, 그리고 이학승 작가의 ‘소리가 사라진 세상’으로 나뉘어 있다. 그렇다. 이 연구실은 《수상한 소리번역가》 전시장이며, 『수상한 소리번역가의 연구실』은 어린이 관람객을 위한 전시 연계 워크북의 제목이다. 그러나 실제 전시장 입구에서 시작되는 질문에서부터 순차적으로 보게 되는 작품 앞에 서면 관람객은 탐구하는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공간에 들어서면 보이는 영상에는 동그라미, 네모, 세모, 꼬부랑 곡선이 순서대로 등장하는데 그 모양과 색이 다채롭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작되어 다양한 모양으로 율동하듯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마치 영상 속 암호를 해석하라는 미션이 적힌 쪽지처럼 영상 작품 옆의 흰 벽에는 모를 말만 가득 적혀있다. 이다희 작가의 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작은 별 변주곡>을 번안한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피아니스트 정한빈의 연주와 함께 흘러나오는 색과 모양들이 잘 어울리는지 우리에게 묻는다. 그리고 색색의 사각형 캔버스 40개가 전시장의 가장 넓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가득 메운 캔버스가 벽 하나로 부족해서 디귿(ㄷ)자로 꺾여서 양옆의 벽면까지 넘어갔는데, 이 작품은 우리에게 헤드폰을 끼고 전망대처럼 생긴 장소에 올라가 망원경으로 보기를 요청한다.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바흐의 선율과 함께 망원경으로 작품을 보고 있자니 마치 현미경으로 사물의 세부를 관찰하는 것 같다. 이내 귀로 들어오는 청각 정보와 눈으로 들어오는 시각 정보가 합쳐져 아득해지면서 작품의 내면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젠 음률에 맞춰 색면이 움직이고, 각각의 색면이 거대한 색면으로 확장되어 하나의 음악이 되고 그 음악과 ‘나’는 어우러져 하나의 음악적 이미지 공간으로서 ‘작품’으로 구성된다.

작품을 따라 벽을 이동하면 또 다른 암호와 미션이 주어진다. “줄을 몸쪽으로 들어 올렸다 놓는다. 빗물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벽을 쓸 듯이 줄에 달린 공을 좌우로 흔든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다.” 핑크색 벽면에 색색의 나무 공이 달린 검정 줄이 매달려 있다. 한 줄 한 줄을 들었다 놓기도 하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줄을 이리저리 흔들어 보기도 한다. 헤드폰을 껴보니 나의 몸짓과 벽에 걸린 조각이 연주를 만들어내는 음악을 듣게 된다. 김채린 조각연구가와 서혜민 소리연구가의 협업으로 탄생된 <조각음계 6>은 조각의 음악을 만들고 듣게 하면서 관람객의 몸짓으로 퍼포먼스를 이루어낸다. 본래 악기는 조각이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조각이라고 구분한 영역과 음을 만들어내는 악기라는 영역, 그리고 우리가 만지고 두들기고 움직이며 생기는 ‘소리’와 연주자가 악기를 두드리며 만들어내는 ‘음악’의 구분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청각의 예술인 음악이 촉각적 활동으로 인해 발현된다는 것, 나아가 모든 촉각적 감각이 소리를 만들어내고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렇다면 소리와 음악의 차이는 어떻게 구별될까? 그리고 나뭇잎 밟는 소리, 바람 소리, 흐르는 강물 소리는 각각의 사물이 움직이며 부딪혀(촉각) 만들어지는 소리임을 우리는 알게 된다.

꼬불꼬불 돌아 다음 연구실로 들어간다. ‘소리가 사라진 세상’이라니! 전시가 아니라 진짜 연구실에 들어온 것 같다. 계속 이어지는 미션은 점점 고난도로 향한다. 퍼포먼스 영상 작품인 <입술 모양으로 대화하기>와 <호출> 시리즈는 정말 암호와 같아서 해독이 쉽지 않다. 영상 속 퍼포머들의 기이한 행동은 알 듯 말 듯한데, 콩트의 한 장면 같아 재미있기도 하다. TV 버라이어티쇼에서 자주 등장하는 게임 ‘고요 속의 외침’이 갑자기 새롭게 이해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게임에서 예능인들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은 우리에게 큰 웃음을 주지만, 소통이 어려운 상황에서 소통을 가능하게 하려면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것쯤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고요 속의 외침’ 게임을 연상하게 하는 이학승의 퍼포먼스 영상 작품은 콩트보다 더 익살스러운데, 그것이 우리 일상 속 소통방식을 풍자한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되어 자신을 반성하게 한다. ‘척추 찌르기’ ‘긴 손톱 어깨 긁기’ 등의 <호출 - 부를 때>나 ‘눈 감추기’ ‘귀 막기’ ‘몸 숨기기’ 등의 <호출 – 말 걸어올 때>, ‘웃음 늦추기’ ‘머리 자동 끄덕이기’ 등의 <호출 - 함께 있을 때> 등은 다소 과장되어 있지만, 청인과 농인 간의 소통 형식을 풍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나아가 우리의 일상의 소통방식 전부를 되돌아보게 한다. 청인과 농인 간 소통에서 일방적이고 폭력적 태도를 비롯해서 상대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적인 태도까지 이해하게 되면 청인-농인 간 소통방식뿐만 아니라 어른-아이 간 대화방식, 그 외 다양한 인간관계, 나아가 인간과 비인간에 이어지는 소통에서 나타나는 문제적 태도를 깨닫게 된다.

전시는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작품이 설치되고 전개되지만, 함께 온 부모-성인에게도 전시를 체험토록 하면서 서로의 눈높이를 조절하고 맞추게 한다. 실상 《수상한 소리번역가》는 “청각을 주제로 한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로, 각각의 작품과 여러 활동들을 직접적 체험하면서 관람객이 직접 만들어간다. 매일 매시간 방문하는 어린이-성인 관람객이 예술가들의 작품과 함께 수없이 많은 ‘예술’ 작품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체험을 통해 ‘예술 현장’은 단순히 소리가 음악이 되는, 즉 예술이 아닌 것이 예술이 되는 것을 알아차리는 과정을 넘어서, 청각이 시각이 되고 촉각적 활동이 음악이 되고 공간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소통의 다양한 방식을 경험하게 하는 ‘미적 교육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가 소음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면, 《수상한 소리번역가》는 다양한 청각의 시각화, 촉각의 예술화를 넘어 다양한 감각을 깨워 소통하기로 나아가는 미적 체험을 통해 인간의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미적 교육을 이해하게 한다. 무엇을 예술이라고 판별하는 능력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다양한 가치를 파악하고 분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미적 교육은 보다 온전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수상한 소리번역가》라는 미적 교육의 장소는 우리로 하여금 장애-비장애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 생물종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으로서 “소리번역가”가 되어야 함을 일깨워 준다.

  • 엄마와 아이가 말소리를 내지 않고 입모양만으로 대화하는 체험을 하고 있다.

    이학승 작가의 ‘소리가 사라진 세상’ 섹션, 관람객의 체험 모습

  • 분홍색 벽면에 색색의 나무 공이 달린 검정 줄이 여러개 매달려 있다. 엄마와 아이가 헤드폰을 쓰고 이 작품을 만지며 체험하고 있다.

    김채린 조각연구가, 서혜민 소리연구가의 ‘들을 수 있는 조각’ 섹션, 관람객의 체험 모습

수상한 소리번역가

2022.8.30.~11.26. | 수원시립어린이미술체험관

소리, 음악 등 청각에서 출발한 현대미술 작품과 연계 활동을 통해,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겨왔던 감각인 청각에 대해 돌아보는 관람객 참여형 프로젝트이다. 청각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소리나 음악의 개념에 대해 다시금 질문을 던지면서 소리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감각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제안한. ​또한 들을 수 있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철저히 청인(비장애인) 위주의 소통을 해왔던 우리의 모습을 되짚어볼 수 있는 작품과 활동으로, 의사소통 방식의 확장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참여작가 : 김채린×서혜민, 이다희, 이학승

전시정보 바로가기(링크)

최창희

문화예술공동체를 위한 감성정책연구소 소장. 「랑시에르 사유에서 예술과 노동의 문제」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론과 현장의 가교 역할을 하는 실천적 이론가의 꿈을 가지고 있다. 예술을 통한 함께 살기에 관한 연구 및 실천적 활동 등을 수행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최근 장애예술 비평담론과 장애미학을 집중 연구하고 있다.
mediaaura@hanmail.net

자료 제공. 수원시립미술관

2022년 11월 (36호)

최창희

최창희 

문화예술공동체를 위한 감성정책연구소 소장. 「랑시에르 사유에서 예술과 노동의 문제」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론과 현장의 가교 역할을 하는 실천적 이론가의 꿈을 가지고 있다. 예술을 통한 함께 살기에 관한 연구 및 실천적 활동 등을 수행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최근 장애예술 비평담론과 장애미학을 집중 연구하고 있다.
mediaaura@hanmail.net

상세내용

인터뷰

  • 관람객 체험 모습. 다양한 색으로 그린, 같은 듯 다른 사각형 모양의 그림들이 디귿 자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그 앞 단상에 선 소녀가 헤드폰을 쓰고 망원경으로 그림들을 보고 있다.

    이다희 작가의 ‘음악에 모양이 있다면’ 섹션, 관람객의 체험 모습

1952년 8월 29일, 뉴욕의 한 야외 콘서트홀에서 예술의 역사를 뒤흔든 연주가 있었다. 초연을 선보였던 그 날, 존 케이지의 <4분 33초>는 바람 소리와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청중의 기침 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곡 전체가 완성되었다. 소리와 소음이 예술이 되던 그 연주는 예술의 역사에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소리와 소음이 예술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예술은 예술이 아닌 것이 예술이 되는” 아방가르드 이론을 설명하는 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예술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우리가 예술로 이해하고 예술로 판단한다는 것은 또한 무엇일까?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2022년 8월 30일, 수원에 수상한 소리번역가의 연구실이 생겼다. “소리를 번역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물음은 연구실에 초대된 우리에게 주어진 연구 주제다. 연구실은 이다희 작가의 ‘음악에 모양이 있다면’, 김채린과 서혜민 예술가의 ‘들을 수 있는 조각’, 그리고 이학승 작가의 ‘소리가 사라진 세상’으로 나뉘어 있다. 그렇다. 이 연구실은 《수상한 소리번역가》 전시장이며, 『수상한 소리번역가의 연구실』은 어린이 관람객을 위한 전시 연계 워크북의 제목이다. 그러나 실제 전시장 입구에서 시작되는 질문에서부터 순차적으로 보게 되는 작품 앞에 서면 관람객은 탐구하는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공간에 들어서면 보이는 영상에는 동그라미, 네모, 세모, 꼬부랑 곡선이 순서대로 등장하는데 그 모양과 색이 다채롭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작되어 다양한 모양으로 율동하듯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마치 영상 속 암호를 해석하라는 미션이 적힌 쪽지처럼 영상 작품 옆의 흰 벽에는 모를 말만 가득 적혀있다. 이다희 작가의 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작은 별 변주곡>을 번안한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피아니스트 정한빈의 연주와 함께 흘러나오는 색과 모양들이 잘 어울리는지 우리에게 묻는다. 그리고 색색의 사각형 캔버스 40개가 전시장의 가장 넓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가득 메운 캔버스가 벽 하나로 부족해서 디귿(ㄷ)자로 꺾여서 양옆의 벽면까지 넘어갔는데, 이 작품은 우리에게 헤드폰을 끼고 전망대처럼 생긴 장소에 올라가 망원경으로 보기를 요청한다.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바흐의 선율과 함께 망원경으로 작품을 보고 있자니 마치 현미경으로 사물의 세부를 관찰하는 것 같다. 이내 귀로 들어오는 청각 정보와 눈으로 들어오는 시각 정보가 합쳐져 아득해지면서 작품의 내면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젠 음률에 맞춰 색면이 움직이고, 각각의 색면이 거대한 색면으로 확장되어 하나의 음악이 되고 그 음악과 ‘나’는 어우러져 하나의 음악적 이미지 공간으로서 ‘작품’으로 구성된다.

작품을 따라 벽을 이동하면 또 다른 암호와 미션이 주어진다. “줄을 몸쪽으로 들어 올렸다 놓는다. 빗물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벽을 쓸 듯이 줄에 달린 공을 좌우로 흔든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다.” 핑크색 벽면에 색색의 나무 공이 달린 검정 줄이 매달려 있다. 한 줄 한 줄을 들었다 놓기도 하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줄을 이리저리 흔들어 보기도 한다. 헤드폰을 껴보니 나의 몸짓과 벽에 걸린 조각이 연주를 만들어내는 음악을 듣게 된다. 김채린 조각연구가와 서혜민 소리연구가의 협업으로 탄생된 <조각음계 6>은 조각의 음악을 만들고 듣게 하면서 관람객의 몸짓으로 퍼포먼스를 이루어낸다. 본래 악기는 조각이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조각이라고 구분한 영역과 음을 만들어내는 악기라는 영역, 그리고 우리가 만지고 두들기고 움직이며 생기는 ‘소리’와 연주자가 악기를 두드리며 만들어내는 ‘음악’의 구분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청각의 예술인 음악이 촉각적 활동으로 인해 발현된다는 것, 나아가 모든 촉각적 감각이 소리를 만들어내고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렇다면 소리와 음악의 차이는 어떻게 구별될까? 그리고 나뭇잎 밟는 소리, 바람 소리, 흐르는 강물 소리는 각각의 사물이 움직이며 부딪혀(촉각) 만들어지는 소리임을 우리는 알게 된다.

꼬불꼬불 돌아 다음 연구실로 들어간다. ‘소리가 사라진 세상’이라니! 전시가 아니라 진짜 연구실에 들어온 것 같다. 계속 이어지는 미션은 점점 고난도로 향한다. 퍼포먼스 영상 작품인 <입술 모양으로 대화하기>와 <호출> 시리즈는 정말 암호와 같아서 해독이 쉽지 않다. 영상 속 퍼포머들의 기이한 행동은 알 듯 말 듯한데, 콩트의 한 장면 같아 재미있기도 하다. TV 버라이어티쇼에서 자주 등장하는 게임 ‘고요 속의 외침’이 갑자기 새롭게 이해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게임에서 예능인들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은 우리에게 큰 웃음을 주지만, 소통이 어려운 상황에서 소통을 가능하게 하려면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것쯤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고요 속의 외침’ 게임을 연상하게 하는 이학승의 퍼포먼스 영상 작품은 콩트보다 더 익살스러운데, 그것이 우리 일상 속 소통방식을 풍자한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되어 자신을 반성하게 한다. ‘척추 찌르기’ ‘긴 손톱 어깨 긁기’ 등의 <호출 - 부를 때>나 ‘눈 감추기’ ‘귀 막기’ ‘몸 숨기기’ 등의 <호출 – 말 걸어올 때>, ‘웃음 늦추기’ ‘머리 자동 끄덕이기’ 등의 <호출 - 함께 있을 때> 등은 다소 과장되어 있지만, 청인과 농인 간의 소통 형식을 풍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나아가 우리의 일상의 소통방식 전부를 되돌아보게 한다. 청인과 농인 간 소통에서 일방적이고 폭력적 태도를 비롯해서 상대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적인 태도까지 이해하게 되면 청인-농인 간 소통방식뿐만 아니라 어른-아이 간 대화방식, 그 외 다양한 인간관계, 나아가 인간과 비인간에 이어지는 소통에서 나타나는 문제적 태도를 깨닫게 된다.

전시는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작품이 설치되고 전개되지만, 함께 온 부모-성인에게도 전시를 체험토록 하면서 서로의 눈높이를 조절하고 맞추게 한다. 실상 《수상한 소리번역가》는 “청각을 주제로 한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로, 각각의 작품과 여러 활동들을 직접적 체험하면서 관람객이 직접 만들어간다. 매일 매시간 방문하는 어린이-성인 관람객이 예술가들의 작품과 함께 수없이 많은 ‘예술’ 작품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체험을 통해 ‘예술 현장’은 단순히 소리가 음악이 되는, 즉 예술이 아닌 것이 예술이 되는 것을 알아차리는 과정을 넘어서, 청각이 시각이 되고 촉각적 활동이 음악이 되고 공간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소통의 다양한 방식을 경험하게 하는 ‘미적 교육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가 소음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면, 《수상한 소리번역가》는 다양한 청각의 시각화, 촉각의 예술화를 넘어 다양한 감각을 깨워 소통하기로 나아가는 미적 체험을 통해 인간의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미적 교육을 이해하게 한다. 무엇을 예술이라고 판별하는 능력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다양한 가치를 파악하고 분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미적 교육은 보다 온전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수상한 소리번역가》라는 미적 교육의 장소는 우리로 하여금 장애-비장애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 생물종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으로서 “소리번역가”가 되어야 함을 일깨워 준다.

  • 엄마와 아이가 말소리를 내지 않고 입모양만으로 대화하는 체험을 하고 있다.

    이학승 작가의 ‘소리가 사라진 세상’ 섹션, 관람객의 체험 모습

  • 분홍색 벽면에 색색의 나무 공이 달린 검정 줄이 여러개 매달려 있다. 엄마와 아이가 헤드폰을 쓰고 이 작품을 만지며 체험하고 있다.

    김채린 조각연구가, 서혜민 소리연구가의 ‘들을 수 있는 조각’ 섹션, 관람객의 체험 모습

수상한 소리번역가

2022.8.30.~11.26. | 수원시립어린이미술체험관

소리, 음악 등 청각에서 출발한 현대미술 작품과 연계 활동을 통해,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겨왔던 감각인 청각에 대해 돌아보는 관람객 참여형 프로젝트이다. 청각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소리나 음악의 개념에 대해 다시금 질문을 던지면서 소리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감각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제안한. ​또한 들을 수 있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철저히 청인(비장애인) 위주의 소통을 해왔던 우리의 모습을 되짚어볼 수 있는 작품과 활동으로, 의사소통 방식의 확장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참여작가 : 김채린×서혜민, 이다희, 이학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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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희

문화예술공동체를 위한 감성정책연구소 소장. 「랑시에르 사유에서 예술과 노동의 문제」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론과 현장의 가교 역할을 하는 실천적 이론가의 꿈을 가지고 있다. 예술을 통한 함께 살기에 관한 연구 및 실천적 활동 등을 수행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최근 장애예술 비평담론과 장애미학을 집중 연구하고 있다.
mediaaura@hanmail.net

자료 제공. 수원시립미술관

2022년 11월 (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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