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지환 작가는 그림으로 먼저 만났다. 어느 날, 우연히 그의 그림을 봤는데, 작품명에 눈길이 갔다. 작품명 〈미안해 꽃〉. 디지털 드로잉 작품이고,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이다. 보랏빛 바탕에 샛노란 동그라미를 얹었고, 그 위에 초록 잎을 두 개씩 달고 있는 분홍색 꽃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다. 봄에 피는 진달래 같기도 하다. 그림은 설레는 봄인데, 왜 미안한가 말이다. ‘미안해’와 ‘꽃’의 사이사이 있었을 법한 그 말은 뭐였을까? 그를 만나게 되면 그의 그림과 함께 스쳐 지나갔던 나의 궁금함을 우선으로 해결할 작정이다.
이희원이 그림을 예전에 봤어요. <미안해 꽃>. 왜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꽃에게 미안한 건가요?
윤지환‘졸업식 못 가서 미안해’였어요. 근데 꽃에게 미안한 건 아니에요. 친구 졸업식에 꽃다발 들고 가야 하는데 못 가서, 꽃 못 사줘서 미안하다고요. 엄마가 코로나 때문에 가지 말라고 했거든요. 그게 너무 미안해서 장미꽃을 주고 싶어요. 제가 사진 담당이었는데 졸업식에 못 가서 시달리고 있었어요.
그는 지인의 졸업식에 꽃다발을 들고 가 축하하며 사진도 찍어주고 싶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가지 못했던 것이 내내 마음에 남았다. 전해주지 못한 꽃다발을 그림으로 그려내고, 제목에 하고 싶은 말을 담았다.
“미안해, (대신에) 꽃(을 그려 너에게 보내)”
그의 분홍색 미안함은 가 닿았을까? 저쪽의 사정은 알 수 없지만, 한 사람의 소박하고 내밀한 이야기가 그림이 되어 낯선 나에게 전해졌다. 적어도 나에게 한동안 미안함은 분홍색이 될 것 같다. 애틋하다. 그의 일상이 듣고 싶어 스무고개 하듯 물어본다.
이희원노래방에서 자주 부르는 노래나 최애 가수가 궁금합니다.
윤지환이승기예요. 〈나랑 결혼해줄래〉.
이희원요즘도 발달장애인 뮤지컬 단체 ‘라하프’에서도 활동하나요? 라하프에서 노래하고 뮤지컬 하는 건 어떠셨어요?
윤지환〈누난 너무 예뻐〉
이희원라하프에서 그 노래 부르셨어요?
윤지환피아노로 〈꽃길만 걷게 해줄게〉 반주할 거예요.
이희원피아노 반주 연습해야겠네요.
윤지환피아노 잘 치는 남편이 되고 싶어요.
이희원좋아하는 요일 있으세요?
윤지환일요일이요. 신부님이랑 친해지려고. 신부님이 매월 교회에 오래요. 신부님이 연애할 때는 밀당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이희원밀당이 뭐예요?
윤지환‘전화번호 필요 없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인터뷰 내내 그는 직접 가져온 ‘소소한소통’에서 만든 잡지 [쉽지]를 자주 들춰보곤 했다.
이희원이 책 좋아하세요?
윤지환네.
이희원이 책의 어떤 페이지가 제일 좋아요? 어디 읽으세요?
윤지환‘실망’이요. 데이트를 위해 준비를 해야 하는데요. 준비가 조금 어려워요. 애인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이희원싸운 적 있어요?
윤지환실망했대요.
이희원이 부분이네요. 한번 읽어봐도 될까요? “실망. 애인이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때,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할 때, 애인에게 실망할 수 있습니다.” 실망, 이 부분이 제일 좋다고 하셨죠?
윤지환‘오빠 실망이야’라고, 그렇게 보내왔어요.
이희원‘오빠 실망이야’라는 메시지를 받으셨는데, 그 실망이 뭔지 여기 나와 있어서 알 수 있었겠네요.
[쉽지]에는 실망에 대한 설명 말고도 고백하는 방법, 애인과 싸우고 화해하는 방법, 이별을 이겨내는 자세 등 연애에 대한 정보가 읽기 쉬운 글로 쓰여 있었다. 이십 대 청년 작가는 자신의 인생에서 청춘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중이다. 그의 관심은 연애와 사랑, 관계에 있다. 그리고 책의 중간에는 윤지환 작가의 이야기도 있었다. 아홉 개의 사과를 그린 그림, 〈내 사과를 받아줘〉를 그리게 된 일을 말하고 있다. 친구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연락처를 알려줬고, 친구가 그 사람에게 전화를 많이 했던 일이다. 그는 이 일을 그림으로 남겼다.
이희원요즘 작가님의 일상 중에서 도전하고 있는 목표나 과제가 있나요?
윤지환저는 이거를 과제로 하고 싶어요. ‘김혜원 우수사원 만들기’요.
이희원김혜원 씨가 누군인가요?
윤지환‘동구밭’ 동생이요. 그 친구가 홈쇼핑에 취업했어요.
이희원김혜원 씨를 어떻게 도와줘야 우수사원이 될까요?
윤지환홈쇼핑에 돈을 많이 내야 돼요. 홈쇼핑 매출을 올려줘서 이 친구를 우수사원 만들기.
이희원스페셜아트라는 예술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작가로 알고 있는데요. 작가님에게 스페셜아트는 어떤 곳인가요?
윤지환저의 동반자예요. 김민정 선생님하고 가까이 지내고 있어요. 김민정 대표님이 스페셜아트 말고 ‘함께 그림’이라고 부르는 걸 동의한다고 그랬어요. 함께하고 싶어서 하신다고요.
이희원스페셜아트라는 말보다 쉽고 좋은 말이네요. 함께 그림.
윤지환함께라면. 그렇게 짓고 싶어요. 여자가, 신부가 라면 먹자면 그렇게 하는 게 맞아요.
이희원여자 말을 잘 들어야 하네요. 함께라면. 함께 그림이라는 거는 어디에다가 쓰고 싶으세요?
윤지환그림에다가요.
이희원거기엔 뭘 그려야 되는데요?
윤지환라면 그려요.
이희원인터뷰 글에 꼭 들어갔으면 하는 게 있으세요?
윤지환그림 전시회요.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여기가 그림 그리는 데라고 알려주고 싶어요.
이희원어떤 사람들한테 알려주면 좋을까요?
윤지환“그림이 어려우세요?”라고 질문해요. 거기서 답이 나와요. ‘그래서 우리는’이라고 적었어요.
이희원스페셜아트의 전시회 울림전 제목이 《그래서, 우리는》이었죠. 그림이 어려운 분들이 여기(스페셜아트)서 그림을 그린다고 소개하고 싶다는 거네요. 꼭 넣을게요. 인터뷰 어땠어요? 질문이 너무 많아요?
윤지환간단해요. (질문 수를) 20번까지 더 늘려요.
이희원20번 정도까지는 늘렸어야 되는데…. 다음번에는 질문을 더 훨씬 많이 준비해서 올게요.
인터뷰 시작 무렵에 내가 그의 그림을 인쇄해서 만든 컵을 만지자, 그는 “만원이에요”라고 가격부터 알려줬다. 나는 가격을 듣고도, 인터뷰에 정신이 팔려 컵은 잊고 있었다.
윤지환(컵을 가리키며) 이거 팔 거예요.
이희원저도 사고 싶은데, 지금 현금이 없어요.
윤지환계좌번호.
이희원좋은 생각이네요. 저한테 두 개 다 파세요. 그 생각을 못 했네요. 여기다 적어주세요.
그는 인터뷰 질문지 아래에 계좌번호를 적어주고, 이제야 하고픈 말을 다 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무고개를 넘는 동안, 윤지환 작가의 이야기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끊임없이 등장했다. 일상을 함께하는 사람들.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감정이 마음에 가득 차 있어 자주 새어 나왔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사람에 대해, 어쩌면 인생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의 그림이 세상의 공감을 얻는다면 이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그가 알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 또 다른 인생과 낯선 사람의 경험에 포개어진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이. 작가의 말대로 라면이 그려진 ‘함께 라면’이라는 그림을 상상하는 순간, 같이 하고 싶은 어떤 얼굴이 생각나게 하니 말이다.
윤지환
1997년생. 발달장애인 동료지원가로 활동했으며,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를 촉구하는 청와대 삭발식에 참여했다. 2021년에 실크스크린 교육을 시작으로 스페셜아트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고, 2023년부터 작가로 근무하면서(기업연계고용) 자신만의 그림체를 개발하고 있다. 여자친구, 연애, 결혼 등 자신의 관심사와 소망을 중심으로 일상의 다양한 모습과 경험을 표현하고 기록한다.
▸ 스페셜아트 홈페이지
이희원
문화예술교육사
장애와 예술에 대해 말하고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
hiwoni12@gmail.com
인스타그램 @jhjs
사진.이재범 POV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자료사진 제공.스페셜아트
2024년 3월 (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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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참여] 이번 인터뷰를 통해 작가님의 매력과 작가님의 앞으로의 행보를 엿볼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였어요. 더불어 밀당 데이트라니..청년세대라면 누구나 격을법한 이야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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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당..정확하네요!! 전화번호 필요없다!! 인터뷰를 보고 작가님 그림을 처음 접하게 됐는데 그림을 보고 있으니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작가님의 일도 연애도 모두 응원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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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당이란 전화번호는 필요없다.. 장황한 표현없이 담백한 말이 인상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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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세계가 언뜻언뜻 보이는 듯한 인터뷰여서 현장에서 작가님의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았어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인터뷰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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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인터뷰여서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밀당 데이트.. 그 또래 청년이 가지고 있는 최대고민, 작가님도 같으시군요^^ 그래서 더 좋습니다. 어떤 편견도 없는 인터뷰와 이야기, 후속 인터뷰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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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내용과 그림안에 일상의 이야기가 다 담겨있어서 동화책보는 기분이였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예술가들 인터뷰 해주세요^^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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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유쾌한 인터뷰라니! 윤지환 작가님의 "사람"에 대한 시선이 참 감동입니다. 이 시선을 조용히 따라가는 인터뷰도 인상적이구요. 마지막에 작가님 수완도 보통 아니십니다ㅎㅎ 뭘 하셔도 야무지게 잘 하시겠습니다ㅎ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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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잘 치는 남편이 되고 싶어요.>에 작가님의 몇 가지 꿈이 담겨 있는건지~ 엄청나게 신박했습니다. 피아노를 치되 적당히는 안되고 잘~ 쳐야하고^^ 남편이 되시려면 아내도 있어야 하고~^^ 작가님의 꿈이 하나 하나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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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작가님과 찰떡같은 인터뷰!! 흥미로웠어요 ㅎㅎ작가님의 그런 모습이 그림에도 잘 나타나있네요 .. 앞으로의 활동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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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당에서 빵 터졌어요~~ 작품활동도 연애도 모두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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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인터뷰였어요. 윤지환작가님의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과 생각을 알 수있어 읽으면서 즐거웠습니다. 작가님 화이팅! 계속 이런 참신한 인터뷰가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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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넘 좋네요 인터뷰 보면서 작가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져서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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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고개식 인터뷰인가요? ㅎㅎ 신선하고도 재미있네요~ 윤지환 작가님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