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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피랩: 몸짓이 들려주는 미술관〉에서 경험한 농인·농문화·농예술 소리에 기대지 않는 세계로의 초대

  • 손청 수어민들레 운영팀장
  • 등록일 2025-12-17
  • 조회수 40

리뷰

농인에 대하여, 우리의 세계

지난 10월, 필자는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감각 너머》 워크숍 ‘피랩: 몸짓이 들려주는 미술관’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은 음성 언어나 수어가 아닌 몸의 감각을 주요 매개로 삼는 퍼포먼스형 관람 실험이었다. 전시장에 놓인 작품 앞에서 즉흥적인 몸짓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소통 방식을 탐색하는 과정이었고, 익숙한 언어나 통역에 기대지 않기에 각자의 움직임이 하나의 표현이자 또 다른 대화가 되는 경험이었다.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십여 명이 프랑스 농인 예술가 두 명을 둘러싸고 있었고, 모두가 수줍은 듯 보였지만 호기심 가득한 모습으로 기다렸다. 관람 시작 전 프랑스 마르세유 보자르 미술학교 출신 농인 예술가 맥스 타게(Max Targuet)와 앙투안 위리(Antoine Wuilly)가 국제수어로 관람 규칙을 설명했다. 옆에는 음성 통역과 한국수어 통역으로 전달되었다.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온전히 몸짓으로만 표현하고 소통해야 한다는 규칙은 매우 놀라웠다. 지금까지 미술관 전시 관람을 하면서 경험해 보지 못한 형태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워크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층으로 이동하자 벽 전체에 입 없이 눈만 그려져 있는 스마일 그림 수백 개가 가득히 채워져 있었다. 매개자가 몸짓으로 무언가 설명하려 했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퍼실리테이터 역할인 맥스가 다가왔다. 그가 그림을 가리키며 ‘왜 입이 없을까요?’라고 질문하자 매개자가 다시 몸짓으로 대답을 이어갔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두 번째 질문을 던졌지만, 여전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맥스와 앙투안은 우리를 다그치지 않고 조용히 다음 전시 장소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팔다리가 길고 독특한 형태의 여성 조각이 서 있었다. 이번에는 앙투안이 ‘WHAT’이라는 동작 하나만 보여주며, 각자 자유롭게 표현해 보라고 유도했다. 필자가 손을 들어 생각을 몸짓으로 표현한 순간, 얼어있던 분위기는 사그라들고 한두 명씩 나와 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서로 다른 몸짓 표현을 열심히 읽어내려 했고, 공간 안에는 집중과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이 경험은 강렬했다. 이 프로그램은 흔히 말하는 ‘장애인 접근성’이나 ‘포용성’에 집중한 것이 아닌, 몸에서 출발해 예술의 핵심에 닿는 감각의 길을 택했다. 우리는 몸을 언어로, 동작을 청취로, 감각을 대화로 삼았다. 작품 앞에서 수어도 음성도 없었고, 모든 동작이 질문이면서 답변이었다. 이 방식은 사실 농인인 필자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익숙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리듬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농인과 청인의 ‘차이’를 강조하지만, 이 워크숍은 또 다른 미래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감각 안에서 우리는 평등하고, 함께 존재하며,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미래였다. 이것은 농인의 전형적인 경험이자, 농문화가 오래도록 지켜온 시각–신체적 세계관이기도 하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청인이 농인인 ‘나’의 세계로 들어왔다는 점이었다. 청인의 세계로 맞춰가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프랑스 농인 예술가들의 이끌림 속에서 우리는 누가 농인인지, 누가 청인인지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동작이 곧 언어였고, 리듬이 음성이었으며, 몸이 문장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 평등은 드물고, 그래서 더욱 귀하다는 것을.

농문화에 대하여, 우리의 미학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 제정 이후, 수어 교육과 학습자는 급증했고 국회와 대형 공연장은 수어통역을 점차 보편적으로 도입했다. 사람들은 농인을 ‘약자’가 아니라 고유한 문화와 창조성을 가진 언어 공동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위상을 정립하고 수어통역 체계가 자리 잡으며 수많은 농예술가가 등장했다. 농시인 옥지구, 수어래퍼 김지연, 무용가 김영민, 일러스트레이터 청홍 등. 그들은 시각과 몸을 매개로 예술계에서 선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강남대학교에서 수어문학을 강의하는 농인 박사 변강석 교수의 지도는 농문학의 이론과 창작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농문화에서 감각은 단순한 경로가 아니라 온몸의 경험이다. 농인은 눈으로 세계를 듣고, 손으로 생각을 말하며, 몸과 공간의 관계를 통해 독창적이고 입체적인 미학을 만들어낸다. 이 미학은 ‘소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보는 것’, 그리고 ‘몸과 공간의 운동성’에서 시작된다.

최근에는 농문학전, 농인 예술전, 농인 출판물까지 빠르게 늘며 문화의 에너지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흐르고 있다. 농문화에서 아름다움은 고정되지 않고 흐르며, 표현은 경계에 머무르지 않고 수어·회화·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가로지르며 확장된다. 예술은 세계와 대화하는 방식이며, 상상력과 창조력이 끝없이 뻗어 나가는 통로이다. 우리는 이제야 농인의 고유한 강점을 다시 발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농예술은 소리의 경계를 넘어 몸·시각·공간을 잇는 다리로, 모두를 새로운 세계로 초대하고 있다.

농예술에 대하여, 우리의 미래

나는 오랫동안 수어 교육과 수어문학, 농문화를 기반으로 활동해 왔다. 그리고 항상 믿어 왔다. 농예술은 시각·신체·공간이 함께 만드는 복합 미학이며, 앞으로 예술생태계에서 더 강력한 창의적 동력이 될 것이다.

미래의 농예술은 ‘농’을 주제로 하는 작품에서 더 나아가 농인이 창작의 주체가 되는 예술로 확장될 것이다. 여성 예술가가 단지 ‘여성 문제’만을 다루지 않듯, 농예술 역시 농인 이슈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농인 예술가는 환경, 자연, 기억, 역사, 수어미학, 디지털 매체와 기술 등 더 넓은 세계를 자유롭게 탐색할 것이다. 미래의 농예술은 정체성의 울타리를 넘어서 감각의 방식으로 세계를 확장할 것이며, 예술계에서 독특한 시각 논리를 지닌 ‘비주얼리스트(visualist)’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농예술은 지금,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특정 집단의 예술이 아니라 새로운 예술 흐름의 중심이 되어 가고 있다. 고유한 감각과 미학을 통해 더 넓고, 더 자유로운 표현의 영역을 열어가고 있다. 소리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궤도를 따라, 자신의 빛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계속해서, 더 밝게 빛날 것이다.

  • 전시장에서 외국 여성 퍼포머가 팔을 굽혀 앞으로 내밀며 섬세한 동작을 선보이고 있고, 관람객들이 둘러서서 집중하고 바라보고 있다. 주변에는 조각 작품과 회화가 배치되어 있다.
  • 전시장 가운데에서 한 참여자가 한 손을 높이 들고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고, 다른 참여자가 헤드셋을 착용한 채 이를 지켜보고 있다. 배경에는 강렬한 색감의 작품이 걸려 있어 생동감 있는 분위기다.

‘피랩: 몸짓이 들려주는 미술관’ 워크숍 현장

피랩: 몸짓이 들려주는 미술관

피랩: 몸짓이 들려주는 미술관

리움미술관|리움미술관 전시장 일대|2025.11.12.

프랑스의 농인 시인이자 배우인 르방 베스카르데스(Levent Beskardes)에게서 영감을 얻은 실험으로, 두 명의 프랑스 청각장애인 예술가와 미술관의 매개팀이 함께 이끌어 간다. 작품과 사람들의 몸짓에 집중하는 과정은 마치 몸짓으로 듣는 경험과도 같아, 예술을 새롭게 바라보고 서로의 감수성을 나누는 경험을 제공한다. 몰입감을 돕기 위해 소음 차단 헤드폰이 제공되어, 청각적 자극을 줄이고 시각적 집중을 강화한다. 관람이 끝나면 국제수화와 한국어 통역이 지원되는 대화 시간이 마련된다. 모두가 각자의 인상을 나누며 농인과 청인의 세계, 프랑스와 한국의 세계관이 교차하는 ‘사이 공간’을 함께 성찰하고자 한다.

∙ 워크숍 정보 :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손청

손청

수어민들레 운영 총괄이자 프로듀서로, 수어문학 전시와 워크숍을 기획·운영하고 있다. 현재 강남대학교에서 수화언어통번역학과 교육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한국 농문화와 수어예술 연구에 힘쓰고 있다. 수어가 단순한 언어를 넘어 문화이자 예술의 독창적 표현으로 확장되기를 꿈꾼다.
signmdl@gmail.com

사진 제공.리움미술관

2025년 12월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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