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25 모두예술주간’의 일환으로 〈장애인문화예술 동아시아 포럼〉 ‘함께 가는 미래, 동아시아 예술의 포용적 실천’이 지난 11월 12일 모두예술극장 공연장에서 펼쳐졌다. 2020년 ‘무장애예술주간’으로 출발한 이 행사는 장애예술의 현황과 창작방식, 정책 흐름을 탐구하고 공유해온 자리로, 올해는 한국·일본·홍콩·중국·싱가포르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동아시아 장애예술 지형과 미래를 함께 조망했다. 이번 포럼은 포용적 예술과 접근성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여 제도적 변화와 예술적 실천으로 이어진 흐름을 살펴보고, 나라마다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여 그동안의 과정과 성과를 되짚어 보면서 전망을 모색하는 압축적 시간이었다. 총 세 개의 세션으로 구성되어 제도와 정책, 축제와 예술현장, 창작 생태계 등 다층적 관점으로 논의되었다. 향후 포럼 자료집 발간을 앞두고 있어, 여기에서는 현장의 주요 흐름을 점검하고 그 의미를 정리해 본다.
정책과 제도, 접근성의 시대
한국: 접근성을 제도화하는 과정
‘성장을 넘어서 성숙으로, 한국 장애예술 정책의 역사적 궤적과 시대적 사명’ (정종은 부산대학교 예술문화영상학과 부교수)
포럼의 문을 연 첫 발제는 한국 장애예술 정책의 최근 10년을 ‘접근성’ 제도화 과정으로 짚었다. 근현대부터 한국문화정책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해, 한국 장애인문화예술원 설립(2015), 「장애예술인 문화예술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2020)에 이르기까지 거버넌스 구축, 환경 및 요소 인프라, 가치사슬 측면에서 10년 동안 이룬 굵직한 성과를 돌아보았다. 이는 단일 기관의 성과를 넘어 2008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비준 이후 의료적 모델에서 사회적 모델로 전환해온 전 세계적 신사회운동의 흐름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강조됐다. 접근성은 더 이상 보조적 서비스 제공의 차원이 아닌 기획·창작·향유 전 과정의 핵심 가치로 자리 잡고 있으며, 접근성 의제를 고민하고 탐색해 온 예술가들의 자발적 실험과 실천이 제도와 맞물리며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제 한국 사회는 생존을 위한 양적 성장에서 성숙의 시대로 가기 위한 근원적인 성찰과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도달했으며, “장애예술과 접근성 정책이 한국 문화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 기함 프로젝트(flagship project)가 되기를 기대한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일본: 복지·예술의 협업이 이끌어낸 도약
‘복지 혹은 예술? 일본 장애예술 정책과 사업’ (오츠카 치에 일본 도쿄예술위원회 활동지원부 상담·서포트 매니저)
두 번째 발제는 일본의 지난 10년을 “법률 제정과 정책 협력의 성과”로 보았다. 그동안 민간 부문에서 ‘아웃사이더아트(Outsider Art)’, ‘에이블아트 운동(Able Art Movement)’, ‘아르브뤼 재포네(Art Brut Japonais)’ 등 끊임없는 노력이 이어져 가능한 성과였다. 2018년 「장애인에 의한 문화예술 활동 촉진법」 제정 이후 문부과학성(MEXT)과 후생노동성(MHLW)의 협력이 의무화되면서 포괄적인 정책 실현을 보장하게 되었고, 장애예술이 복지의 부속 영역이 아니라 예술정책의 중요한 축으로 재위치되었다. 47개 지자체에서 운영되는 후생노동성 산하 장애인 문화예술지원센터에 문화청(ACC)이 장애예술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이원 구조를 갖춘 국가 지원체계는 예술가의 창의성을 중심에 놓고 장애예술의 패러다임을 확장해 왔다. 이 과정에서 문화·복지·교육 분야 사이의 분절, ‘장애예술’이라는 범주화를 통한 의도치 않은 고립 등 도전 과제와 고려해야 할 사항도 짚었다. 발제자는 “포용적 공동체와 예술적 다양성을 위해 복지와 예술의 협력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축제를 통해 드러나는 포용성의 감각과 확장
홍콩: 장애를 창작의 자원으로
‘개념에서 현실로: 홍콩 포용예술 축제의 개발’ (에디 지 홍콩아트페스티벌 노리미츠 프로젝트 디렉터)
2019년 출범한 국제 포용예술축제 노리미츠(NOLIMITS)는 신체와 예술이 ‘능력’이라는 고정관념을 넘어 장애를 ‘제한’이 아닌 ‘창의적 자원’으로 재정의하려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축제는 배리어프리 서비스 제공을 넘어, 예술의 수준과 창의성을 중심 가치로 삼아 장애예술의 고정된 이미지를 바꾸고 시야를 넓혀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홍콩의 많은 장애 관련 단체(NGO)에서 장애인의 예술가로서 잠재력과 가능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교육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예술가들이 더 다양한 선택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며, 축제가 강사 양성, 국제교류, 학제적 연구 개발을 통해 축제 기반의 생태계를 확장해 왔다고 전했다. 노리미츠는 7년간 축제를 통해 포용예술을 자선의 관점에서 예술적 평등과 탁월성으로 패러다임의 획기적 변화를 끌어냈다고 자평한다. 향후 2년간 ‘시각장애인 안마사’와 ‘수어의 기원’이라는 주제로 아시아 시각의 창작 의제를 탐구하고자 국제협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계획도 공유했다.
중국: 민간이 이끄는 변화의 동력
‘장애예술의 실천과 관련된 중국 사회의 변화’ (듀 거 루미너스 페스티벌 창립자, 프로듀서)
중국 최초의 포용예술축제인 루미너스 페스티벌(관련 기사)은 사회적기업 보디 온앤온(Body On&On)이 2019년 시작한 이래 ‘장애·노화·젠더·기후변화’를 주제로 예술생태계를 만들어왔다. 예술이 사회에 어떻게 반응하고 형성되는지 탐구한다는 목표로 ‘돌봄·포용·공존’이라는 핵심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제작, 큐레이션, 국제교류, 홍보의 경험을 집적해 내고자 한다. 중국의 장애예술은 법·제도 기반은 아직 미약하지만, 민간예술단체·NGO·커뮤니티 활동이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담론과 인식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공연예술 생태계가 시장 논리에 취약한 구조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장애예술이 새로운 사회적 서사를 만들어가며 더 넓은 연대의 장을 형성할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하였다.
한국: 세분화된 전문 축제의 가능성
‘한국 장애인예술 축제의 현황과 미래’ (김용우 한국장애인무용협회 회장)
한국장애인무용협회가 운영하는 라라미댄스페스티벌은 발달장애 무용에 특화된 전문 축제다. 서울 등 대도시 중심을 넘어 지역별·예술별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장애예술의 외연을 확장하고 내실을 다지는 양면(two track) 전략을 가져보자는 취지로 출발했다. 기존의 종합예술축제가 대중적 확산에 유효했다면, 이제는 예술분야·장애유형별 전문성을 강화하는 세분된 축제를 통해 전문성 증진 및 저변 확대, 예술가 발굴 및 맞춤형 육성, 정체성 강화 및 창작 공동체 형성으로 창작활동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역 확장, 예술가 발굴, 교육과 창작의 담론 형성 등 지역 기반의 예술생태계를 구축해 장애예술을 지속 가능한 문화자산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축제의 화려한 이면에 그것을 받쳐줄 수 있는 풀뿌리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지 않으면 예술이 지속해서 발전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반문하며 방향성을 모색해 나간다.
지속 가능한 생태계, 예술가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들
싱가포르: 전문예술가로 가는 경로 만들기
‘전문예술 활동으로 나아가기 위한 장애예술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 (안젤라 탄 ART:DIS 상임 대표)
비영리기관 ART:DIS는 ‘장애인을 위한 예술 프로그램은 많지만, 전문예술가로 성장할 길이 단절되어 있다’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직업 예술가로 갈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싱가포르 내 예술센터 3곳을 운영하며 장애인을 위한 전문 예술공간과 다양하고 체계적인 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으며, 기초에서 전문 단계까지 체계화된 멘토링과 역량개발, 네트워크, 직업 기회 제공을 통해 장애예술가가 포기하지 않고 전업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다양한 지역사회와의 협업으로 장애예술가들이 작품을 세상에 공유하고 사회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상업적으로 수익을 만드는 일자리나 프로젝트에 기회를 열어줌으로써 장애예술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 차이로 완성하는 합주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 연주자의 발굴과 육성 및 직업음악인으로의 자리매김을 위한 제언’ (이상재 하트시각장애인체임버오케스트라 음악감독)
2007년 창단해 18년간 활동한 세계 유일의 시각장애인 중심 오케스트라인 하트시각장애인체임버오케스트라는, 전업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의미와 그 조건을 질문해 왔다. 발제자는 오케스트라의 대표로서 시각장애인 연주자의 발굴과 육성, 직업 음악인으로서 어떻게 자리매김하도록 하는지에 대한 그동안의 고민과 제언을 담았다. 이는 예술이 개인의 복지나 재활을 넘어 직업과 생존, 문화적 정체성으로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며, 제도와 담론 못지않게 자립과 지속가능성, 예술시장 안에서의 공정한 평가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고 전했다. 시각장애인 연주자들은 악보를 암기하고 지휘자 없이 청각과 기억, 호흡으로 예술의 본질에 다가간다. 무대에서 장애·비장애인 연주자가 서로 다른 감각적 기반으로 만들어내는 합주는 차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통해 완성해 가며 예술적 깊이를 만든다. 음악은 ‘극복의 서사’가 아니라 ‘존재의 선언’, 문화다양성의 실천이자 포용사회 예술의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42년간 이어온 미학적 저항
‘우생학적 관점에 저항하고 동시대의 미학을 추구해온 타이헨의 42년’ (만리 킴 표현예술단체 타이헨 예술감독)
1983년 창단한 극단 타이헨(Performance Troupe TAIHEN)은 장애인의 감각과 존재 방식에서 출발해 우생학적 관점에 맞선 전위적 신체표현예술 단체이다. 발제를 통해 타이헨의 선언적 예술철학은 다음 다섯 가지로 정리·제시되었다. 첫째, 살아갈 가치가 없는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우생학 이데올로기에 정면으로 맞서 모든 생명을 절대적으로 긍정하기 위한 혁신적인 무대 만들기. 둘째, 표준에 무조건 끼워 맞춰야 한다는 가치체계와 규범에 의문을 던지는 존재로서 정상성의 환상을 깨뜨리기. 셋째, ‘대지의 시선’, ‘누워있는 몸의 존재감’ 등 장애인만의 감각을 미학적 힘으로 전환하기. 넷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영역에 대한 예술적 도전하기. 다섯째, ‘장애예술’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주변이 아닌 중심으로 이동시켜 인간관 자체를 전복하기. 김만리 대표는 “이족직립보행을 통해서 문명을 구축해 온 비장애인의 가치가 과연 절대적인 것인지 바닥으로부터 뒤집는 예술적 혁명이 계속되기”를 바란다며, 장애인 스스로 본인을 긍정하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할 때 문화가 변화할 것이고, 그런 장애인이 아시아 곳곳에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는 말로 자리를 맺었다.
동아시아 장애예술이 요청하는 새로운 연대
이번 포럼은 각국의 제도와 축제, 그리고 생태계 현장의 목소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동아시아 장애예술이 단순한 성장이나 확장을 넘어 성찰의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확인하게 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여러 아시아 국가는 접근성과 포용성이라는 공통의 언어를 자각하며 비슷한 시기, 유사한 흐름으로 확장해 왔다. 포용적 예술에 관한 관심, 장애예술 활동의 증가, 예술계의 접근성 인식 변화는 서로를 견인하며 예술적 실험과 사회적 변화를 동시에 추동하고 있다. 이번 논의를 통해 ‘성장’ 서사만으로 나아갈 수 없는 시점에서 서로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섬세하게 살피고, 각기 다른 조건에서 생성된 감각과 시선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을 마주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동아시아 장애예술은 새로운 연대의 방식을 모색하기 위해 각각의 경험과 제도, 감각과 시각을 예술로 연결하여 조우시키는 것으로 공동의 미래를 형성해 나가리라는 기대와 요청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2025 모두예술주간 - 장애인문화예술 동아시아 포럼

장애인문화예술 동아시아 포럼: 함께 가는 미래, 동아시아 예술의 포용적 실천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모두예술극장|2025.11.12.
한국, 중국(홍콩 포함), 일본,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국가의 장애예술 전문가들이 모여 장애예술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논의하는 국제교류의 장이다. 이번 포럼은 동아시아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장애예술의 성장 과정과 성과를 돌아보며 앞으로의 발전 과제를 모색하는 자리이다. 특히 제도와 정책, 예술 현장, 창작 생태계 등 다양한 차원을 아우르며, 장애예술이 사회와 문화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함께 성찰한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 지역의 공통된 흐름과 차이를 발견하고, 향후 협력적 연대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 2025 모두예술주간 홈페이지 포럼 정보

홍은지
전환의 계기로 작동하는 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며 다양한 창작방식을 고안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 공연예술 연출가.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신촌문화발전소 등에서 일했고, 얼라이브아츠 코모(alivearts como)에서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와 함께 〈팰름시스트〉 〈벙어리시인〉 〈카페더로스트〉 등을 연출했다. 이음온라인 6기 기획위원이다.
eufy6542@hanmail.net
사진.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5년 12월 (70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
이전글 보기
다음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