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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대담] 농문화와 농예술은 어떻게 만나고 소통하는가 농인의 언어로 무대의 자리를 만든다는 것

  • 조희경·지혜원 
  • 등록일 2025-12-17
  • 조회수 24

이슈

수어를 비롯한 농·청각장애인의 문화에 기반한 예술적 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청인의 서술적 언어와 농인의 시각적 언어는 어떻게 만나고 소통하는지, 예술에서 다른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수어통역사와 수어번역가·감수자로 활동하는 농인 당사자의 이야기를 담아본다.

개요

  • 일시2025년 11월 27일(목) 오후 1시

  • 장소모두예술극장 연습실1

  • 참석자 조희경 수어번역가·감수자
    지혜원 수어통역사

  • 책상 앞에 조희경, 지혜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짓고 있다. 두 사람은 오른손을 들어 수어의 [감수], [통역] 의미를 연상시키는 동작을 하고 있다. 뒤쪽으로 부드럽게 주름이 잡힌 회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왼쪽부터 조희경 수어번역가·감수자, 지혜원 수어통역사

수어통역, 번역, 감수의 일

지혜원저는 연극, 방송, 홍보 등 다양한 영역에서 수어통역사이자 수어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 수어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오늘의 이야기 자리를 통해 농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싶다. 예를 들면 농인의 공연에 농문화가 녹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조희경저는 대학에서 수어를 강의하고 수어통역·번역 교육도 한다. 또 농인 수어통역사의 수어 감수도 하는데, 공연이나 전시장・박물관 등 다양한 곳에서 수어통역 대본을 받아 감수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공연장 접근성 자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공연예술 분야에서 수어통역사, 번역가, 감수자 역할은 서로 다르다. 수어통역사는 무대에서 음성언어나 소리를 수어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번역가는 대부분 청인 문화로 된 텍스트를 농문화에 맞게 번역한다. 감수는 수어번역 대본이 잘 번역되었는지 확인하고 더 좋은 번역을 제안하는 일과 무대 현장에서 수어통역이 수어의 문법을 잘 따르고 있는지, 연출가의 의도에 맞게 번역되었는지, 수어통역사의 위치가 농인 관객의 입장에서 잘 보이는지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지혜원수어통역, 번역, 감수 과정을 설명해 주면 좋겠다.

조희경수어통역을 진행할 때 수어감수자와 함께 하는 경우도 있고, 함께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진행하는 방식을 설명해 보겠다. 대체로 이 세 역할이 동시에 대본을 받아 읽으며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연출가를 만나 대본을 잘 이해했는지 작품 연출 방향 등을 확인한다. 연극 수어통역을 의뢰받으면 수어통역사, 번역가, 감수자가 모여 팀을 꾸린다. 이후 대본을 받아 함께 읽으며 분석한다. 연출과 여러 번의 회의를 거치며 연극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작품의 방향성을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청인 수어통역사가 연출과 농인 수어통역사의 대화를 통역한다. 이 과정을 거쳐 번역이 이루어지고, 번역이 끝나면 감수자의 감수가 진행된다.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면, 수어통역사가 번역된 수어를 하면 감수자는 문법이 어색한 곳은 없는지, 비수지 공간 활용이 부족한 곳은 없는지 체크한다. (비수지란 수어에서 손동작 이외의 얼굴 표정, 시선, 몸의 움직임 등을 의미하는 전문 용어다) 연극은 대부분 두세 명의 수어통역사가 통역한다. 연극을 번역할 때는 극중 인물의 성격, 스타일 등을 반영해서 번역해야 한다. 예를 들어, 활발하고 힘이 넘치는 인물이라면 수어번역 역시 활발한 어휘를 선택한다. 반대로 차분한 인물이라면 비교적 차분한 어휘를 선택한다. 수어감수자는 캐릭터 분석부터 수어번역가와 수어통역사가 수어를 잘 소화할 수 있게 조언하고 이끄는 역할을 한다. 번역이 완료된 이후에는 수어감수자가 수어통역사와 함께 공연장에 가서 배우와 수어통역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고 추가적인 자문을 제공한다. 그 후 리허설 때 다시 한번 방문해서 무대 세트와 조명 등의 셋업 상황을 보고 문제가 있으면 무대감독과 조율한다. 이때 중요한 건 자막 위치다. 농인 수어통역사 앞에는 배우의 대사가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모니터가 있다. 만약 모니터의 위치가 너무 높다면 농인 통역사의 시선이 너무 위쪽을 향하게 된다. 관객용 자막이 통역사를 방해하지 않는지 위치를 확인하는 거다. 감수자는 통역사의 위치가 안전한지도 감독한다. 그리고 첫 공연 때 모니터링하면서 개선할 점은 없는지 피드백해 주고 의견을 나눈다.

지혜원2년 전, 처음으로 무대에 통역으로 섰다. 대본을 받은 뒤 혼자 대사를 읽고, 연출에게 장면의 의도를 하나하나 묻는 질의응답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 과정은 온전히 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당시에는 수어감수자가 없었다. 정말 최선을 다했지만, 제가 번역한 수어가 적절한지, 농인 관객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어서 혼란스럽고 불편한 마음으로 무대에 섰다.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반면, 올해는 세 번 정도 무대에 섰는데 그때마다 농인 감수자가 동행해서 체크하고 피드백해 줬다. 덕분에 저의 수어통역이 농인의 이해를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한 긴장감이 조금 완화되었다. 연습을 정말 많이 해서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통역을 진행할 수 있었는데, 농인 관객의 반응도 매우 좋았다. 이후 감수가 정말 필요하고, 전문성을 갖춘 농인 감수자를 섭외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간혹 청인 중에는 농인 감수자가 필요한 이유를 농인 수어통역사의 수어-번역 실력이 부족해서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 감수는 제삼자의 시선에서 전체적인 번역의 흐름, 의미, 맥락을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전문성을 요하는 작업이다. 농인 전문가에게 수어 감수를 받아 더 전문적이고 높은 품질의 번역을 할 수 있게 되며, 결과적으로 수어를 보는 농인 관객 역시 공연을 더 깊고 정확하게 즐길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책을 출판하는 과정에서도 편집, 교정 및 교열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나.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조희경청인 수어통역사가 무대에서 통역할 때도 감수자가 동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농인 관객이 그 통역 내용을 이해했는지 파악하고 있을지, 어떻게 해야 잘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지 궁금하다. 감수자에 대한 예산을 책정하는 경우도 적어서, 올해는 우리가 예산을 신청해 보자고 했는데 정말 적은 비용이었다. 다행히 예술 현장에서 감수자를 배치하는 곳이 조금씩 늘어나고는 있지만, 감수자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감수자는 단순히 수어만 보는 게 아니라 전체 분위기와 배경까지 파악하는 역할을 한다. 수어 문법으로 번역했을 때 농문화와 농인의 감각이 담겨 있는지, 농인 통역사의 자리가 적절한지, 농인 관객의 입장에서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통역이 잘 보이는지 확인한다. 감수자가 그 모든 것을 아울러서 확인해야 통역사가 통역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런데 통역사 혼자 모든 일을 해야 하면 당연히 통역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감수자는 비수지 표현, 수어를 정말 잘 전달하는지, 수어문법 중 하나인 역할전환이 자연스럽게 잘 되는지, 공간 사용을 잘하는지도 중요하게 본다. 사실 이러한 것들은 청인보다 농인이 훨씬 더 잘한다. 청인 수어통역사의 경우 공간 분리를 어색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통역할 때는 수어문법에 맞게 공간을 나눠서 표현해야 한다. 또한 문장에 마침표가 있듯 말이 끝나는 지점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수어의 경우 수어를 하다가 잠깐 멈추는 ‘휴지’로 표현한다. 청인 통역사는 그런 휴지 없이 계속 수어를 해서 농인으로서는 시각적 피로도가 높다. 청인 수어통역사의 경우 은유적인 내용도 직역하기 쉬운데, 농인 감수자와 번역가는 은유적인 내용을 어떻게 전달해야 농인이 잘 이해할 수 있을지 중요한 포인트를 찾으며, 번역할 때 어떤 표현이 좋을지 많은 연구와 회의를 한다. 수어통역사만 있을 때보다 감수자와 번역가가 협응할 때 그런 것들이 잘 이루어지고, 농인 관객의 만족도도 높다. 수어통역사가 배우 옆에서 따라다니며 그림자 통역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보는데, 농인 관객의 시선이 너무 바빠진다. 여기서 대사 치고 저기서 대사 치면 누가 얘기하고 있는지 누가 통역하고 있는지 찾느라 바쁘고, 통역사가 멀어지면 수어가 잘 안 보인다. 그래서 통역사는 한자리에 있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또한 청인 통역사가 배우를 따라 연기하는 공연도 있다. 가령 배우가 울고 있다면 같이 우는 연기를 하며 통역하는 거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연기가 계속되면 농인 관객은 연극에 집중할 수가 없다. 똑같이 연기하고 감정까지 표현하려 하기보다는 대사 전달에 집중하고, 모든 연기는 배우가 표현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지혜원번역할 때 느꼈던 건데, 청인 수어통역사는 역할전환뿐만 아니라 문장에 대한 어휘 선택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없다’라는 단어도 맥락에 따라 어휘 선택이 다르잖나. 그런데 같은 수어만 하는 거다. 반면 농인이 번역할 때는 그 내용이나 흐름에 따라 어휘 선택이 달라져 농인 관객이 더 흥미롭고 재밌게 볼 수 있다. 농인 통역사가 공간 활용을 잘하면서 풀어내니 더 좋아지는 거다. 농문화에서 공간 활용이란 무엇인지 설명해 주면 좋겠다.

조희경공간 활용은 정말 다양하다. 우선 역할전환에 따른 공간 활용이 있다. 예산 문제이기도 한데, 배우가 다섯 명이라면 수어통역사는 보통 두세 명이 다섯 명의 대사를 나누어 통역하게 된다. 각자 주인공 한 명씩 맡고 나머지 조연은 대사 비중에 따라서 역할을 맡는다. 한 사람이 두 사람의 역할을 맡아야 할 때는 공간이 따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엄마와 아들이 만났다면, 왼쪽 공간에서 엄마의 발화가 시작되고, 아들이 발화하면 몸의 제스처나 방향이 오른쪽으로 달라지면서 공간 분리가 이루어진다. 두 번째는 방향이다. 우측에서 오는지, 우측에서 왔다가 좌측으로 가는지, 이런 방향 설정도 공간 활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도 과거·현재·미래 시제에 따라 움직이고 그 과정이 표현될 때 이야기가 되는 거다. 그리고 지형적 공간도 있다. 예를 들어 건물의 고층에서 불이 났다면 수어가 표현되는 위치는 가슴 앞이 아닌 약간 위쪽이 된다. 불이 난 위치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하늘을 봐”라고 할 때는 시선과 손도 하늘을 향한다. 윗사람을 대할 때는 시선이 위로 올라가고 예의를 차리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한다. ‘주다’와 ‘받다’라는 동사도 공간으로 활용한다. 그래서 공간 활용이 잘못되면 이 배우는 누군지, 이 역할은 뭔지 혼동이 생긴다.
농인이 청인보다 공간을 더 잘 활용하는 특성이 있다. ‘일치 동사’(수어에서 주어와 대상의 위치와 방향을 동사 동작 자체에 반영하여 문법적 관계를 표현하는 동사)와 비슷한 의미인데, 물건을 “너에게 주다” “다른 사람에게 주다” “제삼자에게 주다”와 같은 것들 또한 공간 활용으로, 수어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시각언어의 특성 중 대표적인 게 공간 활용이고, 그다음으로 비수지다. 그리고 도상성이 있다. 모양을 손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컵도 모양이 매우 다양한데, 그런 것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시각언어의 특성이다. “이 차를 선생님께 드렸다”라는 표현이 공간에서 같이 활용되는 거다.

농인과 청인 수어통역사의 협업

지혜원지금까지 농인 수어통역사, 농인 수어번역가, 농인 감수자 사이의 협응을 얘기했는데. 그렇다면 농인 수어통역사와 청인 수어통역사의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

조희경무대 공연에서 청인 통역사와 농인 통역사가 협업할 때는 대부분 농인 통역사가 무대에 올라가서 통역하고, 청인 통역사는 객석에서 농인 통역사를 마주 보고 앉아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리를 통역한다. 그러면 농인 통역사는 소리의 정보를 포함하여 무대에서 수어통역을 하는데, 청인 수어통역사의 수어를 농인 수어통역사가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청인 수어통역사의 통역을 보고 농인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농문화를 녹여서 통역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께할 때 더욱 완성도 높은 통역을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행사, 공연 전에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협업이 이루어진다. 농인 수어통역사와 청인 수어통역사는 팀이 되어 수어통역이 잘 보이는 위치는 어디인지, 자막이 잘 보이는지, 사회자의 마이크에 하울링 등 문제는 없는지, 발화자의 속도와 높낮이는 어떠한지 사전에 확인하며 호흡을 맞춰나가며 통역한다. 이것도 협업이다. 예술 분야에서 접근성을 갖춘 공연·전시가 좀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농인 통역사가 무대에서 수어통역을 하는데도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는 공연도 있다. 그 이유는 감수자가 없기 때문이다. 감수자가 있다면 좀 더 확실하게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전문성 있는 농인 감수자를 섭외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연극계에는 조금 발전이 있는 것 같다. 농인이 문화향유권을 좀 더 동등하게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지혜원수어통역 협업은 농인 수어통역사와 청인 수어통역사 두 명이 팀을 이루어 통역하는 것을 뜻한다. 나는 무대 수어통역을 담당하는 동시에 수어통역팀의 총괄을 맡았다. 총괄로서 무대 수어통역이 이루어지기까지 연출과 소통하고, 현장에서 무대 관계자나 배우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한다. 이때 청인 수어통역사가 총괄과 연출이 주고받는 대화 내용을 수어통역과 음성통역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것은 협업이라기보다는 수행통역이다. 한편, 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한 청인 통역사가 제게 수어감수를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분은 수어통역사로 일해왔음에도 제가 수어감수 과정에서 제안한 의견들을 정확히 반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연습 때는 조금 나아지는 듯했지만, 막상 무대에서는 음성언어를 따라가느라 연습한 것이 도로 제자리가 되어버렸다. 공간 활용, 비수지 등 핵심 수어 문법이 체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음성언어 기반으로 수어통역이 이루어지면서 제 감수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고, 그 결과 농인 관객이 공연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면 너무 안타까웠다. 청인 수어통역사가 한국어를 잘한다고 해서 수어를 잘하거나 통·번역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조희경감수자가 청인 통역사와 농인 통역사 중에서 누구를 대할 때 더 편할지를 생각해 보면 농인 통역사일 거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니 더 편한 것도 맞지만, 청인 수어통역사의 수어를 수정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 농인 수어통역사에게 >수정을 제안하면 금방 반영되고, 수어를 자신의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어휘 선택과 표현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청인 통역사는 이미 습관화된 수어 스타일이 있어서 수정하는 게 어렵고, 손에 익을 때까지 계속 연습해야 하고 시간이 필요하다.
통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이해되지만, 그런 부분에선 아쉬움이 남는다. 요즘 농인 통역사 자격증을 따는 사람도 늘어나고 농인 통역사도 많이 배출된다. 재능 있는 사람도 많다. 그들을 발굴하고 무대에 설 수 있게 하면 좋겠다. 해외의 경우 무대공연 수어통역사 중 청인 통역사는 아주 소수다. 대부분 농인 통역사가 무대에 올라가고 청인 통역사가 옆에서 음성언어로 통역을 보조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유독 청인 통역사가 무대에 서는 경우가 많다. 농인은 소리나 음성언어 중심의 공연을 통역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더 잘 전달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아쉽다. 농인 수어통역사는 음악 역시 수어로 충분히 표현 가능하고 농인도 음악을 즐길 수 있다. 그럼에도 청인 수어통역사 중심의 통역 방식이 당연시되는 인식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어, 이제는 그 편견을 재고하고 벗어날 필요가 있다.

지혜원무대공연 통역을 마치고 1층 로비로 가보니 농인 관객이 많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표정이 너무 좋았다. “농인 수어통역사가 무대에서 공연을 통역한다길래 궁금해서 찾아왔는데, 공연을 정말 재밌게 봤다”라고 했다. 내용 전달도 정확했고, 배우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도 잘 이해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사실 청인 수어통역사가 무대에 설 때는 농인 관객이 매우 소수일 때가 많다. 농인이 한두 명 있을 때도 있고, 아예 없었을 때도 있다. 그런데 농인 수어통역사가 무대에 섰을 때는 많은 농인 관객이 찾아왔고 가장 많을 때는 30명도 넘게 왔다. 농인 수어통역팀은 물론 연극계 관계자들도 많은 농인 관객을 보며 놀라워했다.

조희경농인 통역사는 자신이 무대공연 통역을 맡게 되면 주변 농인들과 농인 커뮤니티에 알린다. 그렇게 정보를 얻는 농인들이 공연을 보러 오고, 공연이 끝나고 나서는 서로 공연에 관해 이야기 나눈다. 로비에 농인들이 가득 차고 공연을 본 소감을 적극적으로 나누는 모습에, 그날 현장에 있던 접근성 매니저가 많이 놀라워했던 게 기억난다.

지혜원그전에는 접근성을 위해 큰 비용을 썼는데도 농인이 한두 명 오는 정도였으니, 그렇게 많은 농인 관객에 놀랐을 것 같다. 앞서 얘기한 연출가도 예전에는 청인 통역사를 세워야 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계기로 조금은 변화를 경험했다고 한다. 접근성도 갖췄는데 왜 이렇게 농인 관객이 적냐고 불평하고, 농인은 공연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청인도 있다. 하지만 농인 관객으로서는 비용과 시간을 투자했는데도 내용을 잘 전달받지 못할 바에는 가지 않았던 거다. 나 역시 수어통역이 있는 공연을 2시간 넘게 앉아서 보면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재미있다고 느끼지를 못해서, 다음에 공연 보러 가기 싫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다른 농인도 비슷하게 느꼈을 것 같다.

농예술: 시각적 표현 확장

조희경그래도 조금씩 긍정적인 방향으로 계속 변화하는 것 같다. 일반 수어통역과 예술통역의 차이를 이야기해 보고 싶다. 사실 차이라기보다는 대본과 연기 표현에 따른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무대공연에서는 좀 더 잘 전달하기 위해 크게 표현하고, 리듬도 있을 것이고. 좀 더 큰 개념으로 예술가라면 ‘시각적 토착문화’라고 부르는 VV(Visual Vernacular 비주얼 버내큘러)가 여기에 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수어민들레는 수어문학, 수어시를 VV로 표현하고, 누비스는 수어 노래 등을 하는데, 표현 기법이 조금 다르다. 그리고 수어통역으로 접근하면 또 다르다. 예를 들어 법원, 병원, 경찰서, 학교 등에서의 일반 수어통역과 예술 수어통역은 다르다. 예술 수어통역은 시각언어의 특성이 좀 더 두드러진다. 대본 번역에 기술이 좀 더 첨가되고 시각적으로 좀 더 잘 보이게 하는 거다. 그런 차이는 있지만, 그 안에서의 수어 문법은 똑같다.

지혜원그리고 예술통역에는 그 안에 리듬이 있고 미학적인 요소도 들어간다. 일반 수어통역을 할 때와 달리 예술통역은 숨어 있는 은유적인 표현까지 깊이 있게 통역해야 하는 점이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로 수어 아티스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청인들을 보면 불편한 마음이 든다. 농문화에 대한 이해나 맥락 없이 수어를 퍼포먼스로 소비하며 유튜브나 SNS에 영상을 올리고, 사람들은 그것에 감탄과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그 찬사는 농문화나 농인의 언어에 대한 존중이라기보다 청인이 수어를 다룬다는 사실 자체에 쏠려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구조 속에서 수어는 언어가 아니라 소비되는 콘텐츠로 전락하고, 농인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것처럼 기능하게 된다.

조희경농예술은 농인이 자신의 억압된 삶의 경험을 토대로 표현하는 거라고 본다. 그런데 어떤 청인들은 수어가 아름답게 보인다는 이유로 본인의 예술이라고 가져간다. 그런데 그 안에는 농문화도 없고. 수어에 대한 미학도 없다. 그러면서 본인은 수어 사용자라고 이야기하는 게 불편하다. 예술가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고난을 경험한다. 그런데 농인도 사실 그런 삶을 산다. 농인들이 수어를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농문화를 계승하고 기록하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수어로 표현하는 농인의 예술을 존중해 주고, 더 나아가 농예술에 대한 옹호 또는 보호도 필요한 것 같다. 농예술에는 농인의 인생과 노고가 들어있음을 존중해주면 좋겠다.

지혜원예를 들어 안마사라는 직업은 시각장애인의 생계 안정을 위해 유보 직종으로 자격 제한을 두고 있다. 청인은 사실 다양한 직업군이 있잖나. 그런데 비장애인이 시각장애 안마사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처럼, 수어예술 영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농문화는 농인의 것이며 농인의 언어권에 기반한 고유한 문화다. 그런데 청인이 수어예술을 주도하거나 농문화를 대변하면서 농인의 문화 영역이 침해받고 있다. 농인이 사회에서 배제될수록 농문화에 대한 편견은 강화되고, 결국 농문화가 왜곡되거나 오염되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청인이 수어를 배우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농문화를 존중하고, 그 가치와 농인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선을 넘는 순간, 청인이 농인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조희경청인 아티스트가 영상을 올리면 사람들이 계속 관심을 두는데, 농인 아티스트가 표현하면 반짝 주목받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농인을 섭외하자니 통역사도 필요하고 농인에 대한 인식도 낮다. 수어통역사가 필요하다고 하면 항상 예산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관심을 높이기 위해, 흥행을 위해 이미 청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인플루언서나 셀럽을 섭외하는 등 쉬운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지혜원독일에서는 농인 예술가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지인을 통해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기후행동의 날 행사에서 음악이 나오자 청인 수어통역사가 그 음악을 들으며 수어통역을 했지만, 농인 활동가들은 그 통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전부터 음악 통역은 반드시 농인 수어통역사를 배치해달라고 여러 번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청인 통역사가 음악을 들으며 흥을 느끼고 수어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관객의 주목을 받았고, 그 주목이 일종의 특권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다른 곳에서도 문제가 개선되지 않자 농인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피켓을 들고 콘서트장 앞에서 시위했다. 그 장면을 본 청인들은 통역사보다 시위에 주목했고, 통역사는 당황해서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독일에서는 농인 수어통역사가 무대에 서기 시작했고,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농예술 영역에서 청인이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농인 수어통역사보다 청인 수어통역사를 먼저 섭외하는 경우가 많다. 음성언어로 소통하는 편리함이 우선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이를테면 유럽에서는 VV를 농인의 예술로 인정하고 농인이 주체가 되어 작품을 선보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럽과 달리 농인과 청인이 억지로 함께하는 모습이 불편하다. 문제는, 무조건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농문화와 언어권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다.

조희경유럽에서는 독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공연이 크든 작든 무조건 농인 통역사가 무대에 서고, 청인 통역사는 뒤에서 보조 역할을 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

  • 부드럽게 주름이 잡힌 회색 커튼을 배경으로 조희경, 지혜원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짓고 있다. 두 사람은 양손을 들어 수어의 [반갑다] [안녕] 의미를 연상시키는 동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희경 수어번역가·감수자, 지혜원 수어통역사

예술 현장에서 농인의 주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조희경공연예술 분야에 농인 예술가가 많지는 않다. 좋은 협업 사례도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늘 농인 아니면 청인 이렇게 나뉘었던 것 같고. 사실 농인 예술가와 청인 예술가가 협업하는 게 쉽지 않다. 농인과 청인은 예술가로서 중시하는 가치가 확연히 다르니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농인 예술가가 농문화와 수어를 중심으로 색깔을 내려고 해도 조율하는 과정에서 농인의 색깔이 사라지거나, 또다시 청인 중심의 무대에서 농인은 음성언어나 소리에 맞춰 연기하게 되기 쉽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농문화를 중심으로 한 공연은 거의 못 본 것 같다. 농인 수어통역사의 수어통역 공연은 봤지만, 농인 예술가와 청인 예술가가 동등하게 협업한 사례는 거의 못 본 것 같다.

지혜원몇몇 공연에는 농인 배우가 무대에 서고 농문화가 소소하게 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역시 청인 위주의 공연이고 청인 중심의 이야기다. 이를테면 청인에 관한 스토리를 배역만 농인으로 바꿔 놓는 거다. 이건 번역에 가까운 거라고 할 수 있다. 진짜로 농인 예술가와 청인 예술가의 동등한 무대를 보고 싶다.

조희경예술 현장에서 농인의 창작 주체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농인이 직접 대본을 쓰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농인의 다양한 경험을 담은 재밌고 슬프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정말 많은데, 텍스트로 기록된 게 없어서 너무 안타깝다. 지금이야 카메라로 영상 기록을 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기록할 생각도 하지 못해 많은 문화적 유산이 사라졌다. 만약 농인이 직접 희곡을 쓰고, 농인 배우가 연기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번역’이 아니게 된다. 이미 농인의 수어 문법에 맞게 만들어진 대본이기 때문이다. 수어 농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청인이 만들어 온 대본을 번역해서 농인 배우가 연기하는 것과 농인이 직접 창조한 대본은 확연히 차이가 있을 거다. 농문화가 잘 담겨있다면 많은 농인 관객이 공감할 것이고 농문화의 가치도 커질 것이다.

지혜원저도 지금까지 농인 극작가를 본 적이 없다. 청인이 쓴 대본을 번역해서 연기하는 게 대부분이었던 같고, 그게 조금 아쉽다. 만약 농인 작가가 농인의 삶을 녹여낸 대본을 만들고 농인 배우가 연기한다면, 청인도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 청인이 익숙한 언어와 감각이 아닌 농인의 언어와 문화로 구성된 세계를 만나는 자리 말이다. 지금까지 청인에게 맞춰진 문장을 농인 통역사가 수어로 통역하고, 이것을 농인 관객이 봤다면, 이제는 역으로 청인이 농문화를 경험해 보면 좋겠다. 많은 농인이 예술 현장에 진입하고 싶어 하고 자신의 역할이나 직업을 확장하고 싶은 갈망이 있을 거다. 그런데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정보를 접하기 어렵다. 청인은 이미 다양한 정보와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는 구조 안에 있다. 농인을 섭외하는 과정에서도 직접 농인과 연결되기보다 청인 수어통역사를 매개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방식은 결과적으로 농인의 참여 공간을 점점 더 좁힌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 현장에서 농인 접근성 매니저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연극 일을 하면서 만난 접근성 매니저는 청인이 다수다. 농인의 관점에서 접근성을 설계하고 판단할 수 있는 주체가 현장에 반드시 필요하다.

조희경저도 같은 생각이다. 앞으로 농인이 직접 접근성 매니저로 일하면 좋겠다. 한번은 접근성 매니저가 안내해 준 자리에서 수어통역이 잘 안 보였던 적이 있다. 청인은 잘 캐치하지 못하는 부분이지만, 농인은 시각적으로 어떤 객석 위치가 좋은지를 바로 알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당사자인데도 자꾸 청인 수어통역사에게 설명하는 상황을 자주 접한다. 통역사도 접근성 매니저도 농인 당사자에게 직접 얘기하도록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장애 유형은 다양하고 스펙트럼이 넓은데, 같은 문제로 계속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농인에 대한 이해와 인식 개선 교육도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된다면 청인의 농문화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고 농인 관객이 100% 만족하며 공연을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것 같다.

조희경

조희경

수어 번역·감수자. 제1 언어로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으로, 나사렛대 외래교수로 수어·농문화를 강의하고 있다. 한국수어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수어통역·번역·감수 전문가로 다양한 교육과 자문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리움미술관 〈감각 너머 2024〉 국제수어 통역, 누비스 〈창작연극 오디션 워크숍〉 강의, 공연 〈침묵 속에 기록된〉 수어 지도, 〈라이트 트리스〉 접근성 자문 등 공연뿐 아니라 박물관과 전시의 농인 접근성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chohik@hanmail.net

지혜원

지혜원

수어통역사. 강남대학교 일반대학원 수화언어통번역학과(석사)를 졸업했다. 수어강사로 활동하며, 연극·방송·홍보 등 다양한 영역에서 수어통역사, 수연가, 감수자로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수어민들레에서 〈삐걱삐걱〉 〈나 그냥그냥〉 수어 노래에 참여했다. 무대 통역 참여작으로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 〈생추어리 시티〉 등이 있다. 공저로 『수어로 살아가는 농여성』이 있다.
jee1070@naver.com

정리.최순화 프로젝트 궁리 PD suna.choe@gmail.com
사진.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수어통역.조미혜 수어통역사 coda_mia@naver.com

2025년 12월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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