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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용 배우

인터뷰 진정한 나를 찾아 무대를 누빈다

  • 김지수 극단 애인 대표
  • 등록일 2024-01-31
  • 조회수276

 

인터뷰

장애 배우가 무대에 선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전복이다. 배우와 관객 사이에서 시선을 전복하는 중요한 변화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박미용 배우는 마치 전투에 나서는 군인이 군화를 신듯 휠체어와 보조기로 무장하고 무대에 오른다. 그 고독한 전투를 거듭하며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당당하고 자유로워졌고, 나를 벗어나 나를 바라보며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우주의 별’처럼 반짝이는 관객의 눈망울 덕분이다. 무대에서 배우고 성장한다는 박미용 배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023년에 〈우리와 함께 춤을〉 〈버스, 너 뭐니?〉 〈숨 쉬는 바닷말〉 〈연분홍 치마〉 등 여러 작품으로 무대에 섰다. 게다가 하반기에 많이 몰렸던 탓에 번아웃이 올 만도 한데 아주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나게 되어 반갑다. 어떻게 이렇게 쉼 없이 여러 작업을 하셨나?

잘 안 보이겠지만 입술이 부르튼 상태다. 사진 촬영이 약간 부담스럽긴 했다. (웃음) 무대가 저를 각성시켜 주는 것 같다. 편안한 일상과 달리 무대에 오르려면 대본을 외워야 하고 배우들, 연출진과도 소통하느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긴장하게 된다. 매번 힘들고 스트레스도 있는데 끝내고 나면 또 하고 싶고 안 하면 허전하다. 무대에서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2018년 〈엄마라는 이름으로〉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장애인문화예술 판(이하 극단 판)에서 활동했다. 어떻게 연극을 시작하게 되었나.

2017년 겨울 사회복지사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쉬면서 글쓰기를 해보려고 동아리에 나갔는데 멤버 중에 극단 판 배우가 있었다. 자기가 출연하는 공연에 와달라고 해서 별 뜻 없이 보러 갔다. 배리어프리라는 단어도 모를 때였다. 연극을 워낙 좋아했고 휠체어 장애인들이 나온다고 해서 너무 궁금했지만, 학예회처럼 하지 않으면 다행일 텐데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공간적인 배리어프리뿐만이 아니라 정서적인 배리어프리가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더라. 중증 장애인 배우가 바닥에 내려와서 살풀이춤을 추는데 감동 그 자체였다. ‘저게 자유지. 나는 왜 여기에 묶여 있지? 너희 뭐냐? 너희랑 놀고 싶다!’ 그래서 2018년에 바로 극단 판에 입단하게 되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는 제목부터 아주 울컥하는데 암전 속에서 7명의 배우가 각자의 목소리로 엄마를 외치면서 시작한다. 그때부터 울었던 것 같은데 끝날 때 또 엄마를 불러야 한다. “미용이 엄마 정복동!” 안 울 수가 없다. 벌써 5년 전 일인데도 어제 일처럼 생각난다.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도 계속 꿈꾼다. 브로드웨이까지 가 보고 싶다는 꿈.

공연 한번 보고 바로 연극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전에도 연극을 경험한 적이 있었나?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성탄절 때 극을 써서 아이들에게 B 사감처럼 포스를 뿜으며 스파르타식으로 연출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정말 재밌었는데, 점점 사람들 시선이 부담스럽고 앞에 나서기가 어려웠다. 그냥 조용히 평범하게 사는 게 인생의 목표처럼 되면서 그런 마음을 감추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공연이 마중물이 된 것이다. ‘이거였어, 내가 숨 쉴 수 있는 게!’ 그래서 바로 뛰어들게 되었다.

그렇게 한 번에 푹 빠지다시피 연극계 안으로 들어왔다. 배우로 활동하며 가장 큰 변화가 있었다면 어떤 점일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것. 예전에는 타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면 지금은 좀 즐긴다고 해야 하나? 조명의 따뜻함, 박수의 뜨거움도 있지만, 관객의 시선이 너무 좋더라. 떨리고 바짝바짝 입이 마르는데도 우주의 별처럼 반짝이는 관심이 나를 춤추게 하고, 공연이 좋았다고 얘기해주는 관객의 한마디가 좋다. 시간 내고 돈 들여서 꽃 들고 응원하러 오는 관객의 큰 사랑이 느껴진다. 그동안 느꼈던 열패감, 자괴감, 열등감을 지난 5년 동안 무대에서 다 치유한 느낌이다.

배우님을 오랫동안 눈여겨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첫 작품이 바로 〈삐딱선〉이다. 계단에서 내려와 구르는 장면이 있는데 목발을 쓰더라. 보조기를 하면 무게도 있고 엄청 힘들었을 텐데 너무나 부드럽게 오르락내리락하길래 정말 엄청나게 연습했을 거라고 짐작되었다. 그 후로는 다음번엔 또 어떤 역할을 할지 늘 궁금했다.

〈삐딱선〉을 연출한 분이 장원정 씨다. 〈엄마라는 이름으로〉도 연출했고, 안무 작업도 한다. 그분 덕에 이 휠체어가 내 발이기도 하지만 족쇄라고도 생각하게 되었고, 여기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개인의 취향’을 주제로 2019년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페스트 만신창의’에서 장원정 작가와 폴리오 바이러스에 관한 작업을 했었다. 같이 춤추며 의자에 앉고, 같이 춤추며 보조기를 차고, 같이 춤추며 클러치를 짚고, 내가 쓴 시를 낭독하고, 휠체어를 타고 관객들에게 달리기하자고도 한다. 완전히 무장 해제하고 심연 깊이 들어간 작업이었던 것 같다. 관객들과도 나름대로 소통이 되었다. 헤어롤을 말고 “이게 뭐로 보입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며 소아마비, 폴리오 바이러스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관객들과 소통하는 지점들이 좋았다. 그 작업을 통해서 많이 울었다. 그런 연극 치료도 있지 않은가. 비장애인을 포함하여 뭔가 아픔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관객이 참여하는 공연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치유가 되도록 해보고 싶다. 무대가 나를 많이 가르치는구나 싶었고, 많이 배우고 있다.

극단 판에서는 연극뿐 아니라 영화나 바디퍼커션, 다원적인 프로젝트 등 늘 새로운 도전을 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새롭고 다양한 작업을 하는 것은 어떤지 궁금하다.

그것도 나를 찾는 작업의 하나인 것 같다. 연출들은 내가 모르던 나를 찾게 만들어 주더라. 그래서 연출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내려놓고 더 보여주고 싶을 정도다. 아직은 그냥 부끄러워하지 않고 보여주는 정도인 것 같지만, 그러면 또 부담 없이 봐주고 박수쳐주니까 응원받는 느낌이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이 너무 좋다. 아마 내가 연출하면 배우들이 힘들지도 모른다. 살살 안 할 것 같다. (웃음)

다양한 장르에 대한 도전과 함께 다양한 장애 유형의 배우들이 합을 맞추고 비장애인 스태프들과도 매번 새롭게 만난다. 그러면서 여러 사건이 있을 텐데.

〈A는 빽스치노를 마신다〉에서 내 대사 중에 “너희들 도대체 연습을 해오는 거야? 집에서 열심히 외웠는데 못 외운 거야? 나는 냉장고, 화장실 다 붙여놓고 외워. 너희는 그렇게 하니?” 뭐 이런 게 있었다. 그때만 해도 열심히 안 하는 배우들에게 좀 화가 났다. 장애인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너그럽게 봐주는 게 너무 싫었다. 대사를 외우는 데 걸리는 시간에 차이가 있다는 걸 모르고 억지를 부렸던 거다. 그렇지만 그렇게 힘들게 해냈을 때는 정말 울컥한다. 그 성취감이 전기보다 더 센 충격으로 와닿아서 다시 하는 거지. 하지만 다음에 만나면 또 타이레놀을 준비하겠지? (웃음) 그것을 반복하면서 내가 좀 성숙해졌다고 할까? 극단 판에서 된장같이 익어가고 싶다.

각자의 시간이 무척 달라서 기다리고 견디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그러면서 서로에게 배우게 된다. 판만의 시그니처가 배우들의 움직임 속에 강력하게 있다. 좀 더 도전해 보고 싶은 게 있다면?

지금 극단 판에는 15~20명의 배우가 있고, 자조 모임에는 8~9명 정도가 나온다. 지금은 내가 배우 대표를 맡고 있다. 언젠가 이강백 선생의 희곡 〈결혼〉으로 연출법을 연습한 적이 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를 서희락 배우가 아버지, 내가 딸을 맡아서 같이 했는데, 우리 둘이 케미가 잘 맞았던 것도 즐거웠다. 〈우리와 함께 춤을〉 할 때는 휠체어 클랙슨으로 삐, 뽀, 삐, 뽀 소리를 맞추는 게 힘들다고 들이댔던 후배가 엄청 기특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배우들끼리 정이 드나 보다.
정극에 대한 갈망이 좀 있다. 〈햄릿〉이나 〈변신〉 같은 작품을 휠체어 타고 장애가 있는 몸으로 해보고 싶다고 대표님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극단 판 배우들, 협력하는 비장애인 배우들이 함께한다면 그 많은 대사와 움직임과 신호를 정교하게 짜고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조만간 정말 판다운 시그니처 작품이 나오기를 고대하고 있고, 솔직히 그런 부분은 아직도 목마르고 배고프다.

〈숨 쉬는 바닷말〉에서 해조류로 나왔고, 〈우리 동네 왜 왔니〉에서는 돼지로 출연했다. 인간 연기도 힘들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를 연기하는 것은 어떤가?

처음에 돼지 역할을 하라고 하니 콘셉트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막연했는데, 연출님과 얘기해서 주책맞은 할머니처럼 표현했다. 집을 구하러 다니는 늑대에게 “잘생긴 총각이 왜 집도 못 구했어? 여기 방 있어.”라고 말 건네는 식이다. 그래도 의인화된 표현이라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미역이나 돼지가 사람 캐릭터보다 비교적 자유로웠던 것 같다. 〈숨 쉬는 바닷말〉에서 상대 배우가 “미역국 끓여야겠다”라는 대사를 잊어버리고 나를 쳐다보길래, “미역국은 끓이지 마” 그랬더니 관객들도 재미있어하더라. (웃음) 못생긴 꽃,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더 다양한 역할도 해보고 싶다. 우리 대표님은 〈숨 쉬는 바닷말〉로 순회공연도 하고 해외 공연까지도 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작품 속 휠체어 군무는 정말 굿 아이디어였던 것 같다. 맞추느라고 많이 힘들었지만.

올해 뮤지컬을 두 편이나 했다. 〈숨 쉬는 바닷말〉과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 임일주 대표가 기획한 〈버스, 너 뭐니?〉까지 뮤지컬 도전은 어땠나?

재미있는 경험이었지만 엄청 힘들었다. 연극도 힘들지만 뮤지컬은 첩첩산중이더라. 노래 맞춰야지 합도 맞춰야지, 하루 종일 했는데도 잘 안되고 그랬다. 노래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갑상선암으로 수술받은 후에 자신감이 없어지고 목소리도 간혹 꺾였다. 그래도 성대도 근육이니 연습하면 잡힌다고 해서 약간 자신감을 얻었다. 특히 〈버스, 너 뭐니?〉에서는 국회의원과 맞짱뜨는 역할을 할 수 있어서 속이 시원했다.

장애여성 배우, 그중에도 적극적으로 뭔가 할 수 있는 분이 많지 않아서 외부에서 끊임없이 출연 제의가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외부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는지 궁금하다.

일단 극단 판 소속 배우이다 보니 판의 일정과 겹치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무조건 ‘콜’이다. 외부의 분위기를 겪어보고 싶었고, 극단 판이 추구하는 우리 극단만의 자유로움이 있어서 뭐든지 가능했던 것 같다. 외부 작업은 우리와는 매우 달랐고, 그래서 싫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지금은 ‘이게 우리지!’ 하는 단계가 됐다. 다만 욕심을 내자면, 우리 배우가 15명이라도 30명, 60명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딱 15명만큼만 한다는 거다. “왜 너는 너를 연기하지? 네가 아닌 로미오를 해야지.” 끝없는 욕심일까? 그래서 아직 연출은 하면 안 되겠더라. (웃음)

스케줄이 겹치지 않는 한 참여하더라도, 외부 작업할 때 특별히 신경 쓰는 점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이건 꼭 지켜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나?

거의 없다. 그냥 화장실, 주 출입구 정도?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에서는 20명 정도의 배우가 300여 명의 등장인물을 보여주느라 각자 알아서 옷 갈아입고 뛰어나갔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연습실이 아니었고, 나를 염두에 두었던 장면을 연습할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이 맡았다. 결국 그냥 카메오로 마지막에만 등장하게 되어 연출님이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더라. 지인들이 보러 왔다가 대실망했지만, 구색이라고 보였어도 그렇게 멋있는 공연에 참여한 것만도 감사했다. 그래도 아쉽고 속상해서 공연이 진행되는 열하루 동안 울컥했다. 이게 장애 연극인의 현실이구나 느꼈다. 한번은 쫑파티에 갔는데, 식당 입구에 계단이 떡하니 있었다. 준비한 사람은 엄청 미안해하고 우왕좌왕하는 게 보기 싫어서 그냥 집에 간다고 했다. 극단 판에서는 괜찮은데 비장애인들하고 있으면 쫑파티가 좀 무섭다. 그 외에는 딱히 없다.

장애 배우가 어떤 프로젝트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물리적인 접근성부터 그야말로 수많은 환경을 바꾸러 가는 거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의욕과 전투력으로 불탄다고 한들 적에게 접근이 안 된다. 적을 만나러 갈 수 없는 상황. 그게 너무 원통하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게다가 한쪽에서는 ‘구색 맞추기’가 일어나기도 한다.

나는 구색이라도 참여하자는 쪽이다. 나의 등장 자체가 인식 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출님이 욕심을 내서 내가 필요한 장면을 만들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과 만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나중에는 그것까지 생각하겠지. 연습시간에 휠체어에 앉아 끝없이 기다리는 나를 보면서 비장애 배우들에게도 뭔가 스쳐 지나가는 게 있겠지. 그게 나만의 고독한 전쟁이긴 하다. 구색이든 뭐든. 그래야 뭔가 바뀌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사실 싸우는 것도 전투지만 버티는 것도 전투다. 그 안에서 꿋꿋하게 존재하고 드러나는 것이 우리에게 또 다른 전투이기도 하다.

〈개인의 취향 : 바이러스〉에서 “내 하루가 전투”라는 얘기를 했었다. 보조기가 나의 군화다. 하루하루 그런 마음이 없었으면 벌써 죽었을지도 모른다. 전의를 상실한 군인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 내가 이 자리에서 잘 버티는 거, 견디는 게 나만의 장애 인권 운동이다. “내 삶을 잘 살게. 우리 또 만납시다.” 이런 대사로 헤어졌는데 정말 좋았다. 이제는 울지 않겠다고 했는데 참… 아직도 눈물이 나네.

아, 고독한 일이다. 연극을 하면서 장애에 관한 생각이 달라졌나? 자신에게 ‘배우’는 어떤 의미인가?

매년 봄 새 학년으로 올라가면 새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것보다 더 두려웠던 건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었다. 그게 진짜 영겁의 세월처럼 느껴지면서 저주 같더라.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이 쳐다보면 내가 먼저 설명한다. “이거 궁금하니? 이건 휠체어야. 한번 만져볼래? 이렇게 하면 움직여.” 그 아이가 나를 이상하게 본다고 생각했던 건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다. 근데 무대에서 다른 사람을 연기하며 ‘나는 이렇게 괜찮은 사람인데, 거의 40년 동안 나를 미워하며 살았구나’ 싶었다. 정말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 불편한 나를. 그런데 바깥에서 보니 알게 되었다. 무대가 주는 마력이다. 결국 배우는 나를 찾는 직업인 것 같다. 여러 역할을 하더라도 내가 소화해서 하면 그게 대박 캐릭터인 거고, 그냥 흉내만 내면 그저 그런 거다. 그래서 언젠가 진정한 나를 찾고자 지금도 계속 가고 있다.

말씀대로 장애 배우들에게는 ‘내가 연기하는 그 인물’이 매우 중요하고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 비장애인, 동물, 식물, 그 무엇이어도 된다. 그동안 무척 많은 역할을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역할은 어떤 것이었나?

〈일어나 걸으라〉다. 우리는 극 중에서 우리 각자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었다. 대사도 약간 판타지 같은 면이 있어서 박정자 배우님처럼 드라마틱한 목소리도 내고 너무 즐거웠다. 정말로 좋았던 건 일명 ‘아메바 춤’이라고 부르는 장면이다. 장애인‧비장애인 배우들이 뭉쳐서 아메바나 지렁이, 똬리 튼 뱀처럼 서로 몸으로 부대끼면서 일으켜주고 굴려주고 구르면서 이음아트홀 무대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장면이 있었다. 그 무대가 제일 멋있었다는 주변 분들 평이 정말 많다. 휠체어가 감옥이라고 느낀 순간이기도 하다. 휠체어를 타면 누구 손 잡고 걸을 수도, 팔짱 낄 수도 없지 않나. 외로웠던 것 같다. 이 안에서 혼자 가야 하는 삶에서 벗어난 느낌이었다. 이게 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멋있는 무대와 연기, 그것을 버리지 못하겠다. 내가 바지 위에 보조기 딱 차고 일어나면 너무 멋있다더라. (웃음)

말씀만 들어도 무척 인상적인 장면이었을 것 같다. 휠체어를 타면 갇힌 느낌과 몸끼리 연결되지 않고 단절된 느낌이 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휠체어와 별개로 존재하는 몸을 몹시 그리워하는 배우들이 많다. 이해된다.

그래서 워크숍 같은 것을 하면 비장애인 배우를 휠체어 위에 올라서게 하거나 휠체어에 태우기도 한다. 비장애인 배우도 그런 경험을 하기 쉽지 않아서 재밌어한다. 평소에는 같이 연기하면서 “위험하니 발 조심하세요.” 맨날 이런 얘기만 하지 않나. 너무 싫다. 내가 왜 위험하지? 그래서 그런 외로움이 좀 상쇄되는 작업을 하고 싶다.

얘기하다 보니 우리 극단 배우들을 많이 이해하게 된다. 극단에서의 성취감, 즐거움, 행복이 있다면, 외부에서 비장애인 배우들과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역동적인 상황 속에서 느끼는 또 다른 희열이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외부 활동을 더 많이 하고 싶다기보다는 밖에서 느낀 것을 내부로 가져와서 우리만의 끈끈함, 흥분, 멋을 발산하고 싶다. 그들은 근사하고 우리는 구차하고 그렇지 않다. 이제는 콩깍지를 벗겨내고 그냥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한다. 그동안의 시행착오가 우리가 뭔가 발휘할 때 밑거름, 좋은 토양이 되어주겠거니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살인마, 사이코패스, 이 구역의 미친년, 무서운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역할. 착한 장애인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너무 참고 있지 않았나 싶다. 풀고 싶은 한, 감추고 있는 분노가 아직도 내 속에 있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절대로 연출들이 맡기지 않는 역할이기도 하다. 얼마나 무섭겠나. 아니, 반대로 하나도 안 무서울 것 같기도 하다.

제가 이런 농담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못 죽인다. 왜냐고? 시체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일동 웃음) 그런데 연극에서는 가능하니까 무대에서 해보자고 얘기했었다. 많은 배우가 악역을 맡고 싶어 하는데, 우리 안에 있는 억눌린 감정 같은 것을 표출하고 싶은 것 같다. 배우님이 쓰고 연출하면 좋겠다. 혹시 내년에 연출 데뷔할 계획이 있나?

〈체크인 북극성〉이라는 시나리오를 저와 제 친구, 다른 장애여성 한 분의 이야기로 쓰고 있다. 실제로 몸에 센서를 달아서 충전해야 몸이 움직이는 분인데, 이마에 작은 뿔처럼 센서가 달려 있다. 마무리 짓기가 어렵다. 클라이맥스도 없고 갈등도 없는 세 여자 이야기인데 궁금해할까 싶기도 해서 고민 중이다.

요즘 장애계에서도 사이보그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장애 배우들이 외부에 캐스팅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출이나 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기에 정말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내 공연을 가족 중에서 아들만 딱 한 번 보러 왔고, 딸은 민망해서, 남편은 일하느라 한 번도 안 왔다. 외롭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눈치 안 보고 마음대로 연기할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마흔 넘어서 연극을 시작했는데, 안 했다면 갱년기가 엄청 힘들었을 거다. 대본 잘 외우는 내가 자랑스럽고 인터뷰도 하고 촬영도 하는 나의 삶이 좋다. 젊은 배우들이 무대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 일찍 시작한 게 부럽기도 하고 든든하기도 하다. 이렇게 장애인이 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있게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곧 이루어질 미래다. 이 기사가 나오면 가족들에게 마음껏 자랑하시라. 나 이런 사람이라고, 다음에 내 공연 안 보러 오면 내쫓는다고. 인터뷰 해주셔서 감사하다.

  • 여러 배우가 한 덩어리로 몸을 밀착한 채 서거나 앉거나 엎드려 각자의 움직임을 하고 있다.

    〈일어나 걸으라〉(2022)

  • 해조류 느낌의 의상을 입고 휠체어를 탄 세 명의 배우가 못마땅해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숨쉬는 바닷말〉(2023)

박미용

장애인문화예술 판 배우. 2018년 〈엄마라는 이름으로〉로 데뷔한 후 〈빵과 장미〉 〈삐딱선〉 〈우리 동네 왜 왔니?〉 〈우리와 함께 춤을〉 〈숨 쉬는 바닷말〉 〈연분홍 치마〉 등 다수 작품에 출연했다. 그밖에 〈개인의 취향 : 바이러스〉(장원정 연출, 2019),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김아라 연출, 2019, 2021), 〈갈라〉(제롬 벨 연출, 2020), 〈버스, 너 뭐니?〉(임일주 기획, 2023) 등 외부 작업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2021년 대한민국패럴스마트폰영화제에 출품한 단편영화 〈시간의 온도차〉에 출연한 바 있다. 성북마을극장을 베이스캠프로 브로드웨이까지 더 넓은 무대를 찾아 나서고 싶다.

김지수

극단 애인 대표. 연출, 작가, 배우이자 장애인 연극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3년부터 연극을 시작했고, 2007년 극단 애인을 창단했다. 단편영화 시나리오 〈러브MT〉 〈으랏차차〉, 장편 희곡 〈대바늘 코바늘〉 〈알록달록 한땀한땀〉 〈기억이란 사랑보다〉 등을 썼다. 〈고도를 기다리며〉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 〈한달이〉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이음온라인 1기 기획위원, 장애인문화예술활동지원위원회 1기 위원으로 활동했다.
auleala@daum.net

정리.남은정 프로젝트궁리 대표 archive0721@gmail.com
사진.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자료사진 제공.박미용, 장애인문화예술 판
인터뷰 장소 제공.장애인문화예술 판(성북마을극장)

2024년 2월 (50호)

상세내용

 

인터뷰

장애 배우가 무대에 선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전복이다. 배우와 관객 사이에서 시선을 전복하는 중요한 변화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박미용 배우는 마치 전투에 나서는 군인이 군화를 신듯 휠체어와 보조기로 무장하고 무대에 오른다. 그 고독한 전투를 거듭하며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당당하고 자유로워졌고, 나를 벗어나 나를 바라보며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우주의 별’처럼 반짝이는 관객의 눈망울 덕분이다. 무대에서 배우고 성장한다는 박미용 배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023년에 〈우리와 함께 춤을〉 〈버스, 너 뭐니?〉 〈숨 쉬는 바닷말〉 〈연분홍 치마〉 등 여러 작품으로 무대에 섰다. 게다가 하반기에 많이 몰렸던 탓에 번아웃이 올 만도 한데 아주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나게 되어 반갑다. 어떻게 이렇게 쉼 없이 여러 작업을 하셨나?

잘 안 보이겠지만 입술이 부르튼 상태다. 사진 촬영이 약간 부담스럽긴 했다. (웃음) 무대가 저를 각성시켜 주는 것 같다. 편안한 일상과 달리 무대에 오르려면 대본을 외워야 하고 배우들, 연출진과도 소통하느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긴장하게 된다. 매번 힘들고 스트레스도 있는데 끝내고 나면 또 하고 싶고 안 하면 허전하다. 무대에서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2018년 〈엄마라는 이름으로〉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장애인문화예술 판(이하 극단 판)에서 활동했다. 어떻게 연극을 시작하게 되었나.

2017년 겨울 사회복지사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쉬면서 글쓰기를 해보려고 동아리에 나갔는데 멤버 중에 극단 판 배우가 있었다. 자기가 출연하는 공연에 와달라고 해서 별 뜻 없이 보러 갔다. 배리어프리라는 단어도 모를 때였다. 연극을 워낙 좋아했고 휠체어 장애인들이 나온다고 해서 너무 궁금했지만, 학예회처럼 하지 않으면 다행일 텐데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공간적인 배리어프리뿐만이 아니라 정서적인 배리어프리가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더라. 중증 장애인 배우가 바닥에 내려와서 살풀이춤을 추는데 감동 그 자체였다. ‘저게 자유지. 나는 왜 여기에 묶여 있지? 너희 뭐냐? 너희랑 놀고 싶다!’ 그래서 2018년에 바로 극단 판에 입단하게 되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는 제목부터 아주 울컥하는데 암전 속에서 7명의 배우가 각자의 목소리로 엄마를 외치면서 시작한다. 그때부터 울었던 것 같은데 끝날 때 또 엄마를 불러야 한다. “미용이 엄마 정복동!” 안 울 수가 없다. 벌써 5년 전 일인데도 어제 일처럼 생각난다.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도 계속 꿈꾼다. 브로드웨이까지 가 보고 싶다는 꿈.

공연 한번 보고 바로 연극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전에도 연극을 경험한 적이 있었나?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성탄절 때 극을 써서 아이들에게 B 사감처럼 포스를 뿜으며 스파르타식으로 연출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정말 재밌었는데, 점점 사람들 시선이 부담스럽고 앞에 나서기가 어려웠다. 그냥 조용히 평범하게 사는 게 인생의 목표처럼 되면서 그런 마음을 감추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공연이 마중물이 된 것이다. ‘이거였어, 내가 숨 쉴 수 있는 게!’ 그래서 바로 뛰어들게 되었다.

그렇게 한 번에 푹 빠지다시피 연극계 안으로 들어왔다. 배우로 활동하며 가장 큰 변화가 있었다면 어떤 점일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것. 예전에는 타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면 지금은 좀 즐긴다고 해야 하나? 조명의 따뜻함, 박수의 뜨거움도 있지만, 관객의 시선이 너무 좋더라. 떨리고 바짝바짝 입이 마르는데도 우주의 별처럼 반짝이는 관심이 나를 춤추게 하고, 공연이 좋았다고 얘기해주는 관객의 한마디가 좋다. 시간 내고 돈 들여서 꽃 들고 응원하러 오는 관객의 큰 사랑이 느껴진다. 그동안 느꼈던 열패감, 자괴감, 열등감을 지난 5년 동안 무대에서 다 치유한 느낌이다.

배우님을 오랫동안 눈여겨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첫 작품이 바로 〈삐딱선〉이다. 계단에서 내려와 구르는 장면이 있는데 목발을 쓰더라. 보조기를 하면 무게도 있고 엄청 힘들었을 텐데 너무나 부드럽게 오르락내리락하길래 정말 엄청나게 연습했을 거라고 짐작되었다. 그 후로는 다음번엔 또 어떤 역할을 할지 늘 궁금했다.

〈삐딱선〉을 연출한 분이 장원정 씨다. 〈엄마라는 이름으로〉도 연출했고, 안무 작업도 한다. 그분 덕에 이 휠체어가 내 발이기도 하지만 족쇄라고도 생각하게 되었고, 여기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개인의 취향’을 주제로 2019년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페스트 만신창의’에서 장원정 작가와 폴리오 바이러스에 관한 작업을 했었다. 같이 춤추며 의자에 앉고, 같이 춤추며 보조기를 차고, 같이 춤추며 클러치를 짚고, 내가 쓴 시를 낭독하고, 휠체어를 타고 관객들에게 달리기하자고도 한다. 완전히 무장 해제하고 심연 깊이 들어간 작업이었던 것 같다. 관객들과도 나름대로 소통이 되었다. 헤어롤을 말고 “이게 뭐로 보입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며 소아마비, 폴리오 바이러스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관객들과 소통하는 지점들이 좋았다. 그 작업을 통해서 많이 울었다. 그런 연극 치료도 있지 않은가. 비장애인을 포함하여 뭔가 아픔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관객이 참여하는 공연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치유가 되도록 해보고 싶다. 무대가 나를 많이 가르치는구나 싶었고, 많이 배우고 있다.

극단 판에서는 연극뿐 아니라 영화나 바디퍼커션, 다원적인 프로젝트 등 늘 새로운 도전을 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새롭고 다양한 작업을 하는 것은 어떤지 궁금하다.

그것도 나를 찾는 작업의 하나인 것 같다. 연출들은 내가 모르던 나를 찾게 만들어 주더라. 그래서 연출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내려놓고 더 보여주고 싶을 정도다. 아직은 그냥 부끄러워하지 않고 보여주는 정도인 것 같지만, 그러면 또 부담 없이 봐주고 박수쳐주니까 응원받는 느낌이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이 너무 좋다. 아마 내가 연출하면 배우들이 힘들지도 모른다. 살살 안 할 것 같다. (웃음)

다양한 장르에 대한 도전과 함께 다양한 장애 유형의 배우들이 합을 맞추고 비장애인 스태프들과도 매번 새롭게 만난다. 그러면서 여러 사건이 있을 텐데.

〈A는 빽스치노를 마신다〉에서 내 대사 중에 “너희들 도대체 연습을 해오는 거야? 집에서 열심히 외웠는데 못 외운 거야? 나는 냉장고, 화장실 다 붙여놓고 외워. 너희는 그렇게 하니?” 뭐 이런 게 있었다. 그때만 해도 열심히 안 하는 배우들에게 좀 화가 났다. 장애인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너그럽게 봐주는 게 너무 싫었다. 대사를 외우는 데 걸리는 시간에 차이가 있다는 걸 모르고 억지를 부렸던 거다. 그렇지만 그렇게 힘들게 해냈을 때는 정말 울컥한다. 그 성취감이 전기보다 더 센 충격으로 와닿아서 다시 하는 거지. 하지만 다음에 만나면 또 타이레놀을 준비하겠지? (웃음) 그것을 반복하면서 내가 좀 성숙해졌다고 할까? 극단 판에서 된장같이 익어가고 싶다.

각자의 시간이 무척 달라서 기다리고 견디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그러면서 서로에게 배우게 된다. 판만의 시그니처가 배우들의 움직임 속에 강력하게 있다. 좀 더 도전해 보고 싶은 게 있다면?

지금 극단 판에는 15~20명의 배우가 있고, 자조 모임에는 8~9명 정도가 나온다. 지금은 내가 배우 대표를 맡고 있다. 언젠가 이강백 선생의 희곡 〈결혼〉으로 연출법을 연습한 적이 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를 서희락 배우가 아버지, 내가 딸을 맡아서 같이 했는데, 우리 둘이 케미가 잘 맞았던 것도 즐거웠다. 〈우리와 함께 춤을〉 할 때는 휠체어 클랙슨으로 삐, 뽀, 삐, 뽀 소리를 맞추는 게 힘들다고 들이댔던 후배가 엄청 기특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배우들끼리 정이 드나 보다.
정극에 대한 갈망이 좀 있다. 〈햄릿〉이나 〈변신〉 같은 작품을 휠체어 타고 장애가 있는 몸으로 해보고 싶다고 대표님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극단 판 배우들, 협력하는 비장애인 배우들이 함께한다면 그 많은 대사와 움직임과 신호를 정교하게 짜고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조만간 정말 판다운 시그니처 작품이 나오기를 고대하고 있고, 솔직히 그런 부분은 아직도 목마르고 배고프다.

〈숨 쉬는 바닷말〉에서 해조류로 나왔고, 〈우리 동네 왜 왔니〉에서는 돼지로 출연했다. 인간 연기도 힘들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를 연기하는 것은 어떤가?

처음에 돼지 역할을 하라고 하니 콘셉트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막연했는데, 연출님과 얘기해서 주책맞은 할머니처럼 표현했다. 집을 구하러 다니는 늑대에게 “잘생긴 총각이 왜 집도 못 구했어? 여기 방 있어.”라고 말 건네는 식이다. 그래도 의인화된 표현이라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미역이나 돼지가 사람 캐릭터보다 비교적 자유로웠던 것 같다. 〈숨 쉬는 바닷말〉에서 상대 배우가 “미역국 끓여야겠다”라는 대사를 잊어버리고 나를 쳐다보길래, “미역국은 끓이지 마” 그랬더니 관객들도 재미있어하더라. (웃음) 못생긴 꽃,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더 다양한 역할도 해보고 싶다. 우리 대표님은 〈숨 쉬는 바닷말〉로 순회공연도 하고 해외 공연까지도 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작품 속 휠체어 군무는 정말 굿 아이디어였던 것 같다. 맞추느라고 많이 힘들었지만.

올해 뮤지컬을 두 편이나 했다. 〈숨 쉬는 바닷말〉과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 임일주 대표가 기획한 〈버스, 너 뭐니?〉까지 뮤지컬 도전은 어땠나?

재미있는 경험이었지만 엄청 힘들었다. 연극도 힘들지만 뮤지컬은 첩첩산중이더라. 노래 맞춰야지 합도 맞춰야지, 하루 종일 했는데도 잘 안되고 그랬다. 노래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갑상선암으로 수술받은 후에 자신감이 없어지고 목소리도 간혹 꺾였다. 그래도 성대도 근육이니 연습하면 잡힌다고 해서 약간 자신감을 얻었다. 특히 〈버스, 너 뭐니?〉에서는 국회의원과 맞짱뜨는 역할을 할 수 있어서 속이 시원했다.

장애여성 배우, 그중에도 적극적으로 뭔가 할 수 있는 분이 많지 않아서 외부에서 끊임없이 출연 제의가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외부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는지 궁금하다.

일단 극단 판 소속 배우이다 보니 판의 일정과 겹치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무조건 ‘콜’이다. 외부의 분위기를 겪어보고 싶었고, 극단 판이 추구하는 우리 극단만의 자유로움이 있어서 뭐든지 가능했던 것 같다. 외부 작업은 우리와는 매우 달랐고, 그래서 싫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지금은 ‘이게 우리지!’ 하는 단계가 됐다. 다만 욕심을 내자면, 우리 배우가 15명이라도 30명, 60명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딱 15명만큼만 한다는 거다. “왜 너는 너를 연기하지? 네가 아닌 로미오를 해야지.” 끝없는 욕심일까? 그래서 아직 연출은 하면 안 되겠더라. (웃음)

스케줄이 겹치지 않는 한 참여하더라도, 외부 작업할 때 특별히 신경 쓰는 점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이건 꼭 지켜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나?

거의 없다. 그냥 화장실, 주 출입구 정도?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에서는 20명 정도의 배우가 300여 명의 등장인물을 보여주느라 각자 알아서 옷 갈아입고 뛰어나갔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연습실이 아니었고, 나를 염두에 두었던 장면을 연습할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이 맡았다. 결국 그냥 카메오로 마지막에만 등장하게 되어 연출님이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더라. 지인들이 보러 왔다가 대실망했지만, 구색이라고 보였어도 그렇게 멋있는 공연에 참여한 것만도 감사했다. 그래도 아쉽고 속상해서 공연이 진행되는 열하루 동안 울컥했다. 이게 장애 연극인의 현실이구나 느꼈다. 한번은 쫑파티에 갔는데, 식당 입구에 계단이 떡하니 있었다. 준비한 사람은 엄청 미안해하고 우왕좌왕하는 게 보기 싫어서 그냥 집에 간다고 했다. 극단 판에서는 괜찮은데 비장애인들하고 있으면 쫑파티가 좀 무섭다. 그 외에는 딱히 없다.

장애 배우가 어떤 프로젝트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물리적인 접근성부터 그야말로 수많은 환경을 바꾸러 가는 거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의욕과 전투력으로 불탄다고 한들 적에게 접근이 안 된다. 적을 만나러 갈 수 없는 상황. 그게 너무 원통하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게다가 한쪽에서는 ‘구색 맞추기’가 일어나기도 한다.

나는 구색이라도 참여하자는 쪽이다. 나의 등장 자체가 인식 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출님이 욕심을 내서 내가 필요한 장면을 만들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과 만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나중에는 그것까지 생각하겠지. 연습시간에 휠체어에 앉아 끝없이 기다리는 나를 보면서 비장애 배우들에게도 뭔가 스쳐 지나가는 게 있겠지. 그게 나만의 고독한 전쟁이긴 하다. 구색이든 뭐든. 그래야 뭔가 바뀌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사실 싸우는 것도 전투지만 버티는 것도 전투다. 그 안에서 꿋꿋하게 존재하고 드러나는 것이 우리에게 또 다른 전투이기도 하다.

〈개인의 취향 : 바이러스〉에서 “내 하루가 전투”라는 얘기를 했었다. 보조기가 나의 군화다. 하루하루 그런 마음이 없었으면 벌써 죽었을지도 모른다. 전의를 상실한 군인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 내가 이 자리에서 잘 버티는 거, 견디는 게 나만의 장애 인권 운동이다. “내 삶을 잘 살게. 우리 또 만납시다.” 이런 대사로 헤어졌는데 정말 좋았다. 이제는 울지 않겠다고 했는데 참… 아직도 눈물이 나네.

아, 고독한 일이다. 연극을 하면서 장애에 관한 생각이 달라졌나? 자신에게 ‘배우’는 어떤 의미인가?

매년 봄 새 학년으로 올라가면 새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것보다 더 두려웠던 건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었다. 그게 진짜 영겁의 세월처럼 느껴지면서 저주 같더라.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이 쳐다보면 내가 먼저 설명한다. “이거 궁금하니? 이건 휠체어야. 한번 만져볼래? 이렇게 하면 움직여.” 그 아이가 나를 이상하게 본다고 생각했던 건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다. 근데 무대에서 다른 사람을 연기하며 ‘나는 이렇게 괜찮은 사람인데, 거의 40년 동안 나를 미워하며 살았구나’ 싶었다. 정말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 불편한 나를. 그런데 바깥에서 보니 알게 되었다. 무대가 주는 마력이다. 결국 배우는 나를 찾는 직업인 것 같다. 여러 역할을 하더라도 내가 소화해서 하면 그게 대박 캐릭터인 거고, 그냥 흉내만 내면 그저 그런 거다. 그래서 언젠가 진정한 나를 찾고자 지금도 계속 가고 있다.

말씀대로 장애 배우들에게는 ‘내가 연기하는 그 인물’이 매우 중요하고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 비장애인, 동물, 식물, 그 무엇이어도 된다. 그동안 무척 많은 역할을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역할은 어떤 것이었나?

〈일어나 걸으라〉다. 우리는 극 중에서 우리 각자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었다. 대사도 약간 판타지 같은 면이 있어서 박정자 배우님처럼 드라마틱한 목소리도 내고 너무 즐거웠다. 정말로 좋았던 건 일명 ‘아메바 춤’이라고 부르는 장면이다. 장애인‧비장애인 배우들이 뭉쳐서 아메바나 지렁이, 똬리 튼 뱀처럼 서로 몸으로 부대끼면서 일으켜주고 굴려주고 구르면서 이음아트홀 무대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장면이 있었다. 그 무대가 제일 멋있었다는 주변 분들 평이 정말 많다. 휠체어가 감옥이라고 느낀 순간이기도 하다. 휠체어를 타면 누구 손 잡고 걸을 수도, 팔짱 낄 수도 없지 않나. 외로웠던 것 같다. 이 안에서 혼자 가야 하는 삶에서 벗어난 느낌이었다. 이게 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멋있는 무대와 연기, 그것을 버리지 못하겠다. 내가 바지 위에 보조기 딱 차고 일어나면 너무 멋있다더라. (웃음)

말씀만 들어도 무척 인상적인 장면이었을 것 같다. 휠체어를 타면 갇힌 느낌과 몸끼리 연결되지 않고 단절된 느낌이 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휠체어와 별개로 존재하는 몸을 몹시 그리워하는 배우들이 많다. 이해된다.

그래서 워크숍 같은 것을 하면 비장애인 배우를 휠체어 위에 올라서게 하거나 휠체어에 태우기도 한다. 비장애인 배우도 그런 경험을 하기 쉽지 않아서 재밌어한다. 평소에는 같이 연기하면서 “위험하니 발 조심하세요.” 맨날 이런 얘기만 하지 않나. 너무 싫다. 내가 왜 위험하지? 그래서 그런 외로움이 좀 상쇄되는 작업을 하고 싶다.

얘기하다 보니 우리 극단 배우들을 많이 이해하게 된다. 극단에서의 성취감, 즐거움, 행복이 있다면, 외부에서 비장애인 배우들과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역동적인 상황 속에서 느끼는 또 다른 희열이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외부 활동을 더 많이 하고 싶다기보다는 밖에서 느낀 것을 내부로 가져와서 우리만의 끈끈함, 흥분, 멋을 발산하고 싶다. 그들은 근사하고 우리는 구차하고 그렇지 않다. 이제는 콩깍지를 벗겨내고 그냥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한다. 그동안의 시행착오가 우리가 뭔가 발휘할 때 밑거름, 좋은 토양이 되어주겠거니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살인마, 사이코패스, 이 구역의 미친년, 무서운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역할. 착한 장애인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너무 참고 있지 않았나 싶다. 풀고 싶은 한, 감추고 있는 분노가 아직도 내 속에 있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절대로 연출들이 맡기지 않는 역할이기도 하다. 얼마나 무섭겠나. 아니, 반대로 하나도 안 무서울 것 같기도 하다.

제가 이런 농담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못 죽인다. 왜냐고? 시체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일동 웃음) 그런데 연극에서는 가능하니까 무대에서 해보자고 얘기했었다. 많은 배우가 악역을 맡고 싶어 하는데, 우리 안에 있는 억눌린 감정 같은 것을 표출하고 싶은 것 같다. 배우님이 쓰고 연출하면 좋겠다. 혹시 내년에 연출 데뷔할 계획이 있나?

〈체크인 북극성〉이라는 시나리오를 저와 제 친구, 다른 장애여성 한 분의 이야기로 쓰고 있다. 실제로 몸에 센서를 달아서 충전해야 몸이 움직이는 분인데, 이마에 작은 뿔처럼 센서가 달려 있다. 마무리 짓기가 어렵다. 클라이맥스도 없고 갈등도 없는 세 여자 이야기인데 궁금해할까 싶기도 해서 고민 중이다.

요즘 장애계에서도 사이보그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장애 배우들이 외부에 캐스팅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출이나 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기에 정말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내 공연을 가족 중에서 아들만 딱 한 번 보러 왔고, 딸은 민망해서, 남편은 일하느라 한 번도 안 왔다. 외롭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눈치 안 보고 마음대로 연기할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마흔 넘어서 연극을 시작했는데, 안 했다면 갱년기가 엄청 힘들었을 거다. 대본 잘 외우는 내가 자랑스럽고 인터뷰도 하고 촬영도 하는 나의 삶이 좋다. 젊은 배우들이 무대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 일찍 시작한 게 부럽기도 하고 든든하기도 하다. 이렇게 장애인이 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있게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곧 이루어질 미래다. 이 기사가 나오면 가족들에게 마음껏 자랑하시라. 나 이런 사람이라고, 다음에 내 공연 안 보러 오면 내쫓는다고. 인터뷰 해주셔서 감사하다.

  • 여러 배우가 한 덩어리로 몸을 밀착한 채 서거나 앉거나 엎드려 각자의 움직임을 하고 있다.

    〈일어나 걸으라〉(2022)

  • 해조류 느낌의 의상을 입고 휠체어를 탄 세 명의 배우가 못마땅해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숨쉬는 바닷말〉(2023)

박미용

장애인문화예술 판 배우. 2018년 〈엄마라는 이름으로〉로 데뷔한 후 〈빵과 장미〉 〈삐딱선〉 〈우리 동네 왜 왔니?〉 〈우리와 함께 춤을〉 〈숨 쉬는 바닷말〉 〈연분홍 치마〉 등 다수 작품에 출연했다. 그밖에 〈개인의 취향 : 바이러스〉(장원정 연출, 2019),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김아라 연출, 2019, 2021), 〈갈라〉(제롬 벨 연출, 2020), 〈버스, 너 뭐니?〉(임일주 기획, 2023) 등 외부 작업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2021년 대한민국패럴스마트폰영화제에 출품한 단편영화 〈시간의 온도차〉에 출연한 바 있다. 성북마을극장을 베이스캠프로 브로드웨이까지 더 넓은 무대를 찾아 나서고 싶다.

김지수

극단 애인 대표. 연출, 작가, 배우이자 장애인 연극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3년부터 연극을 시작했고, 2007년 극단 애인을 창단했다. 단편영화 시나리오 〈러브MT〉 〈으랏차차〉, 장편 희곡 〈대바늘 코바늘〉 〈알록달록 한땀한땀〉 〈기억이란 사랑보다〉 등을 썼다. 〈고도를 기다리며〉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 〈한달이〉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이음온라인 1기 기획위원, 장애인문화예술활동지원위원회 1기 위원으로 활동했다.
auleala@daum.net

정리.남은정 프로젝트궁리 대표 archive0721@gmail.com
사진.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자료사진 제공.박미용, 장애인문화예술 판
인터뷰 장소 제공.장애인문화예술 판(성북마을극장)

2024년 2월 (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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