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광장
2022년 시작한 이음리뷰클럽은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구성원들이 창작자, 관계자, 관객으로 참여한 공연, 전시, 행사의 감상과 후기를 나누는 모임입니다. 올해 새롭게 모인 4기 멤버 역시 예술의 미학적 완성도에서 접근성 이슈까지, 장애 당사자의 관점에서 자유롭게 이야기 나눕니다.
9~10월의 리뷰▶ 전시 《데이터감상실》 | 전시 《집, 옷을 입다》 | 축제 〈2025 제8회 대한민국패럴스마트폰영화제〉 | 연극 〈마트로시카〉 | 국악 〈덩덕쿵별쿵 어린 왕자〉 | 연극 〈여러 가지 나쁜 일〉
임현주
“그림은 어디에?”
미술에 관심 있는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문화실험공간 호수를 방문했다. 《데이터감상실》은 청년예술가 김민진과 배준형의 협업 전시이자, 관객이 직접 작동하고 체험하는 전시였다. 스마트폰 사용 기록, SNS 흔적 등 디지털 데이터를 작가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회화, 영상, 설치작품 등을 통해 다양한 감각으로 예술을 경험하게 했다.
김민진 작가의 〈AquaSonar(아쿠아소나)〉는 VR과 사운드 시스템을 결합한 몰입형 미디어아트로, 마치 물속에 들어온 듯한 청각적·시각적 경험을 한다. 배준형 작가의 설치작품은 캐릭터 ‘깜냥’을 중심으로 기술 발전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내며, 관람객에게 복합적인 질문을 던진다. 김민진 작가의 사운드 기반 작품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청각 중심의 몰입을 가능하게 했으며, VR 장비와 음향의 조화는 감각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식이었고, 배준형 작가의 캐릭터 설치물은 시각적 요소만으로 서사를 따라갈 수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데이터 감상실》은 관람객이 예술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예술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 전동휠체어가 자유롭게 이동하기에는 다소 불편한 점이 아쉬웠고, 자막 제공과 음성 안내 등이 함께 고려된다면 더욱 포용적인 예술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예술이 모두를 위한 언어가 되기 위해, 물리적·정보적 접근성까지 아우르는 전시 기획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고명숙
10월 8일 오후. 넉넉했던 추석 연휴가 끝나갈 즈음 안국동으로 향했다. 요즘은 한 달에 한 번 조계사에서 ‘보리수아래’ 모임을 하느라 그 동네에 가지만, 나는 지금은 서울공예박물관이 된 풍문여고를 나왔고, 풍문여중까지 합치면 6년을 매일 그곳에 다녔다. 비록 꼴등만 하고 귀찮게 했던 제자이고 친구였지만, 내게도 분명 학창 시절의 그리움과 사랑, 행복이 있으니, 박물관이 된 모교를 보는 것이 못내 허하다.
서울공예박물관에서는 한국-폴란드 섬유공예 교류전 《집, 옷을 입다》가 열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1층에서 관람하면 되었다. 전시물 사이도 좁지 않아서 이동에 불편은 없었고, 작품 설명은 활동지원사 선생님에게 읽어달라고 했다.
이 전시는 전기 사용 이전 시대의 실내 섬유 문화에 주목한 폴란드의 전시에 화답하는 전시란다. 불편함의 재인식 위에서 한국과 폴란드는 〈공간의 호흡〉, 〈계절의 조율〉을 통해 자연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삶의 방식과 섬유의 기능을 조명한다. 우리가 잊고 지낸 계절 언어를 다시 불러낸다.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사유하고 섬유의 감각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공간의 호흡〉은 한국 고유의 계절관을 섬유와 공간 빛(공기) 흐름의 관계로 보여주고자 한다. 한옥은 계절 변화에 섬세하게 반응하던 생활양식의 집약체이다. 섬유는 자연과 인간 공간을 한 호흡으로 연결하며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던 우리의 미세 감각을 드러낸다. 〈계절의 조율〉은 옷을 입은 집을 보여준다. 전기 보급 전 폴란드에서 직물은 계절 따라 실내에 입히는 옷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집안의 직물을 걸고 걷는 일은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 날씨의 다채로움, 하루의 리듬에 공명하며 자연의 순환에 참여하는 의례였다. 옷을 입은 집은 사람들이 자연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매개체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미묘하게 변하는 자연의 순환 주기에 무뎌져 있다. 이 전시는 가정용 직물을 통해 잊힌 생활 속 의례를 되살리고 다시금 계절의 흐름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아무리 무더운 여름 날씨라 해도 에어컨은 싫고 선풍기 바람도 버거운 나. 아무리 추워 달달 떨려도 히터에는 머리 아파하고, 아무리 햇빛 꺼리며 자외선 피해야 한다는 사람들 속에만 있어도 햇빛 받기를 참 좋아하는 나. 저녁달 새벽별, 빛 한 바가지 한 줄기마저 그리며 살고 있다.
양병철
지난여름이 더웠던 만큼 반가운 가을날에 제8회 대한민국패럴스마트폰영화제 개막식에 다녀왔습니다. 양병철에게 묻고 답하며 이희원이 기록합니다.
희원:우리가 본 첫 작품이 〈하얀소리-되새길수록 선명해지는〉이었잖아.
병철:남자주인공 승호가 청각장애인이야. 카페에서 알바하는데, 손님이 오미자차 주문했는데 유자차를 줬어. 손님이 화났고, 그담에 승호는 사장님한테 잘렸어.
희원:알바하다 잘린 적 있어?
병철:알바했는데, 안 잘렸어. 유니클로 명동점에서 2023년에. 매장 청소하고 정리하고. 근데 이제 명동점은 없어졌어. 롯데월드에서도 일했었고.
희원:많이 했다. 알바할 때 승호처럼 힘들었던 거 있어?
병철: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친하고 싶은데 안 친해서
희원:직장은 나도 그래.
병철:여자주인공은 카페 매니저야.
희원:맞아. 은수.
병철:은수는 승호가 청각장애인이라서 음악 소리 작게 했어. 사장님이 와서 카페 음악을 왜 작게 하냐고, 크게 하라고 했어. 은수가 깜짝 놀랐어. 은수는 승호 잘 도와줘.
희원:그래서 승호 친구 재겸이가 그러잖아. 둘이 썸타냐고.
병철:은수가 승호 좋아져서 신부님께 고민 상담해. 신부님이 듣다가 “보청기 밧데리 나갔나?” 그래
희원:맞아. 그 장면 너무 웃겼어. 은수는 말하는데 신부님은 계속 듣기만 하고 아무 말이 없었는데, 그게 보청기 밧데리 때문이었다니. 극장 안에서 다들 빵 터졌지.
병철:이 영화제 다른 영화에 내가 아는 사람도 나와.
희원:그래? 감독, 촬영, 배우 중에 여기서 어떤 거 해보고 싶어?
병철:나는 배우. 대본 잘 외워야 돼.
희원:영화나 연극 아카데미 같은 거 있잖아.
병철:배우 수업해 보고 싶어.
희원:오 배우님~ 난 관객 할게. 내가 보러올게. 어머, 밖이 깜깜해. 이제 그만 가자.
병철:내일은 긴 팔 입어야겠다. 안녕.
영화제 출품작은 대한민국패럴스마트폰영화제 유튜브 채널(@KPSFF2022)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개막식
개막식 GV(관객과의 대화)
지혜연
우연히 인터넷에서 광고로 접한 작품. 윤제문, 정석용 배우가 포스터에 크게 있다. 윤제문 배우를 무대에서 너무 보고 싶었는데, 마침 추석 이벤트 50% 할인으로 예매! 득템!! 브라운관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을 소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얼른 공연일이 오길 기다렸다.
배우 7명의 합이 아주 착착 맞는다! ‘마트로시카’는 까도 까도 새로운 즐거움이 탄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극단 이름이다. 그러나 까면 깔수록 엎친 데 덮친 일들로 가득하고, 어떡해서든 위기를 헤쳐나간다. 즐거움이 탄생하는 곳은 관객석! ‘똥’이라는 다소 단순한 소재로 상황적인 웃음 폭발! 피식피식 웃던 웃음소리들은 점점 더 커져 객석에서 합창을 하게 된다. 눈치 볼 필요가 없다. 웃기면 웃으면 되는 공연이다! 끊임없이 벌어지는 일들이 어떻게 처리될지 계속해서 기대하게 된다. 등을 대고 볼 수가 없다!
소극장인데도 의자는 그리 불편하지 않다. 아쉬운 점은, 장애인은 이동권이 보장된 사람만 객석에 앉을 수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즐거운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11월 초까지 공연되니 웃음을 되찾고 싶은 분, 마구마구 웃고 싶은 분은 꼭 극장을 찾아보시라!
커튼콜
지혜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K’를 넣어 새롭게 태어난 작품이다. 인형극, 그림자극, 국악 등 좋은 재료들로 비벼진 비빔밥이다! 한국 사람도 어렵게 생각하는 ‘국악’이라는 장르를 두 가지의 장단으로 쉽게 접근시킨다. 반복 접근으로 잊을 수가 없다.
처음 간 국립국악원. 신발을 벗고 무대에 선 적은 있지만,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객석은 처음이라 신기하면서 편했다. 시작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첫 암전에도 단 한 명의 아이도 소리 지르지 않았다. 사람도 나오고, 인형도 나온다. 곧 적응되면 사람이 인형이고, 인형이 사람이다. 하나의 인형에 두 사람이 붙어 무대를 기어다닌다. 또한 인형을 입고 다리가 되며, 영혼이 된다.
메시지는 어렵지 않다.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이처럼 1시간 공연 동안 객석과 무대는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함께 공연을 만들어 갔다. ‘빨리빨리 사회’에 적응한 어른들은 중간이 쉽지 않다. 템포가 처음-중간-끝이 비슷하다. 잠시 지루함처럼 느껴지지만, 아이들 집중도가 최고다. 중간중간 짧은 코믹 요소는 어른 취향이다. 오늘 아주 맛있는 색다른 비빔밥을 먹고 왔다!
커튼콜
김보라
일주일간 교토페스티벌의 여러 프로그램을 따라가느라 원래 나의 속도보다 몇 배 이상으로 정신없이 움직이며 여러 개의 공연과 전시를 보던 중이었다. 나에겐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공연이었지만, 엔딩콜의 사진 찍을 기회도 놓치고 그 후 이어진 아티스트 토크도 듣지 못했다. 역시나 그룹으로, 페스티벌로, 투어로 우르르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늘 꼴찌이며, 피해를 주지 않아야겠다는 마음과 나를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엎치락뒤치락하며 따라다니다 보면 개인적인 궁금증이나 섬세한 감정의 꼬리는 종종 잘리는 것 같다. 이 작품 역시 그랬다.
백투백시어터(Back to Back Theatre)는 호주 질롱이라는 도시에 기반을 두고 있는 공연팀으로, 신경다양성 혹은 지적장애를 가진 배우들이 이끌고 있다고 한다. 공연 내내 적고 강력한 대사(자막이 스크린 한가운데에 나와 영어치고는 매우 잘 읽혔다)들이 지난 나의 ‘접근성’ 프로그램들을 관통했다. 이 마음을 공연이 끝나고 멤버들과 공유하고 싶었지만, 바로 옆 멤버는 졸았다고 하고, 다른 멤버는 “원래 공연은 더 슬프게 만드는 방식을 아는 법”이라고 말한다. 그들에게서 나의 실낱같은 ‘손상의 연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한 사람은 매우 즐거운(?) 공연이었다며, 특히 한 여자배우가 하는 말들이 매우 좋았다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멤버는 그 여자배우가 유일한 희망이라고 하였다.
“Diversity also can say that one species can survive(다양성이란 오직 하나의 종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Because People are cowards(왜냐하면 사람들은 겁쟁이니까).”
“I don’t want someone can be hurt and I don’t want to be hurt either(나는 누군가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 역시도 상처받고 싶지 않아).”
공연 중 기억에 남는 대사들이다. 기억 속엔 이 대사는 모두 다른 사람에게서 나온 말 같다. 배우들의 움직임과 대사가 매우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것을 보면, 이 공연은 수많은 즉흥 실험 속에서 나온 시나리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후에 카탈로그를 찾아보았는데, 역시나 디렉터가 주도하는 창작 과정 속에서 배우들이 직접 내뱉은 말과 행동들이었다고 적혀있었다. (참고로 인터넷 검색 결과, 디렉터나 팀의 설립자들은 장애 당사자성을 갖고 있진 않다고 한다.)
나는 이 공연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그물과 같은 구조물이 전형적인 ‘접근성’을 바라보는, 생산하는 비장애인들의 시선에서 나온 결과물들이 부딪히고 뒤엉킨 모습 같았다. 매우 차갑고 날카롭게 보이는 파이프들의 연결. 이것들을 연결할 때 멀리서 보일 정도로 매우 심하게 떨리던 한 배우의 손부터 몸 전체.
우리는 ‘다양성’을 위해 시각장애인만이 아닌 ‘저시력자’라는 말을, ‘장애인’만이 아닌 ‘장애 당사자성을 띠는 사람’이라는 말 등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해진 단어들은 각각 다양성에 관해 체감하는 무게 또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위의 대사들처럼, ‘살아남는다’라는 말의 무게감, ‘겁쟁이’에 대한 무게감, ‘상처’에 대한 무게감 말이다. 나는 이 무게감이, 그리고 이러한 무게감을 지닌 공연들이 있기에 더 발전되고 정교한 다양성의 예술 그리고 사회가 탄생할 것이라고 믿는다.
백투백시어터 〈여러 가지 나쁜 일(Multiple bad things)〉 예고편
영상 출처. 교토국제공연예술제 유튜브 채널

고명숙
시인이자 작사가, 동료상담가입니다. 장애불자문화예술단체 ‘보리수아래’에서 시를 쓰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은 한식 중에서도 채식을 좋아하고, 믹스커피 중독입니다. 2025년 제35회 구상솟대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고양이, 토끼와 사는 집사입니다.

김보라
도시 안에서 퍼포먼스와 워크숍을 기반으로 작업하며 여전히 시각 중심적인 미술이 어떻게 감각을 재구성하며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공동체적 관점으로 탐구한다.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희귀 망막 변화로 인해 저시력-접근성의 세계에 들어선 지 채 1년이 안 되었다. 그간 여러 단체전과 퍼포먼스 페스티벌, 발달장애인/신경다양성 전문배우극단과 소리와 빛 중심의 공연단에서 작가 및 퍼포머로 함께하였다. 현재는 단체 ‘둥지’와 개인전 《터치투어⠁⠢마음씨》를 통해 작품을 이어가고 있다.

양병철
취미는 연극이나 뮤지컬 관람이고, 가족과 함께 삽니다.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찌개이고, 아이스 커피와 과자도 좋아해요. 용산행복장애인자립센터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임현주
지체장애를 가진 미술작가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많고 그림을 통해 소통할 때 즐겁습니다. 개인전 및 초대전 10회, 단체전 200여 회 참가하였습니다.

지혜연
사막여우. 연기하는 사람. 큰 귀를 가진 사막여우처럼 잘 듣고 싶어 인공와우를 착용한 청각장애인.
사진 및 캡션 제공.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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