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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작업 동료-서로 함께의 의미 협업 비상! 신뢰를 상상하라

  • 이지혜 문화매개실천연구소 대표
  • 등록일 2025-10-22
  • 조회수 135

이슈

협업이라는 말이 지난해진 지 오래다. 단발성의 표피적인 협업에서 의미를 찾기 어렵기 때문일 테다. 협업으로부터 오는 피로감과 다양한 협업의 상흔이 미술장에 남아있다. 내가 아는 한에서, 예술계에서 활동하는 40세 이상의 국내 장애 작가는 극소수다. 예술가의 활동은 사회정치적 환경과 연결되는데, 양육자 세대의 장애에 대한 관념의 변화는 확실히 작가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이를테면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난 작가들이 대거 출현하기 시작한 것은 그들 부모 세대의 예술 활동 지원 여부가 절대적인 요인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여전히 장애가 있는 작가들의 작품은 가족에 의해 버려진다. 사실 이것은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자본을 거스르며 작업하는 구성원을 반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장애예술가가 주류의 고등교육에 포함되기 어려운 제반 환경과 미술계에서 도움 없이 네크워크를 형성하지 못하는 어려움은 협업을 불가능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개인이 그 모든 어려움을 돌파하고 미술계에서 비장애인에 가깝게 활동하기란 쉽지 않다.

자기 세계의 축이 아직 마련되지 못한 창작자 사이의 협업은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 상황에 대한 유연함이나 해결방법이 서툴러 저항과 갈등의 압력을 세게 받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수행했던 공동과제가 일으킨 소음을 떠올리면 된다. 기업과의 협업은 대체로 상품에 이미지를 삽입하거나 작가를 활용한 브랜드 이미지 제고 정도이다. 하지만 지금 말하는 협업은 서로의 에고를 희생하거나 결합하는 것이 아니다. 협업이란 두 개의 세계, 즉 서로 다른 두 축이 충돌하면서 일어나는 장면이다. 격렬할 수도, 조화로울 수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장애 작가의 활동 반경을 늘리고 동등한 활동이 가능할 수 있는 제반 환경을 만드는 것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고, 작가가 자기 세계를 신나게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왔다는 전제하에 이야기해 보자.

2022년 오스트리아 빈 현대미술관(MUMOK, Museum Moderner Kunst)에서 열린 《협업(Collaborations)》전을 기획한 하이케 아이펠다우어(Heike Eipeldauer)는 예술적 협업의 상징적 사례로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를 제시하며, 두 사람의 1970~1980년대 협업을 “두 개체의 융합이 아니라 경계의 실험”이라고 해석했다. 세계의 경계 지대를 탐색하는 것이다. 얼마나 조응하고 얼마나 조율되는지. 1960년대에 형성된 플럭서스의 전위예술가 집단처럼 콜렉티브 형식이나 공동체를 이루어 같은 예술적 가치를 향유하는 활동을 협업이라고 할 수도 있다. 플럭서스에서 중요한 협업의 덕목은 매니페스토를 통한 실험의 장을 구축한 점이다. 그것은 매우 정치적이기도 하고 개인적이기도 하다.

한국의 장애예술 장에서 진행되는 협업은 대체로 장애·비장애의 경계·편견·낙인 허물기에 해당한다. 빈 현대미술관 관장을 역임한 카롤라 크라우스(Karola Kraus) 또한 단순히 여러 사람이 함께 작업하는 것을 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단순히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만 몰입하며 작업할 때는 알 수 없었던 저항이나 갈등의 불편함을 조율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찾아 자기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다.

도나 헤러웨이가 『트러블과 함께하기』에서 “우리는 서로 함께-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듯, 점과 점을 연결하여 전혀 알 수 없는 차원을 생성하는 것은 혼자만의 몰입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협업은 창작에서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을 일으켜야 하는 성가신 과정이 필수적이다. 작업이 작가가 자기 세계를 확장하는 것이라 할 때, 협업은 사실 굳이 불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협화음의 가능성을 수렴하며 사건을 일으켜야 하는 이유는 협업이라는 과정에서만 얻을 수 있는 직관 즉, 다른 세계를 가늠할 수 있는 직관을 길러내기 때문이다. 이는 홍콩의 철학자 육후이가 말한 ‘직관으로서의 상상력’과 연결된다. 그는 이 상상력이 기존의 논리적 사유나 도식화된 개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미지의 경험이나 이미지, 감각의 충격을 포착할 수 있다고 봤다.

협업이 중요한 이유를 좀 더 살펴보면, 첫째는 개별 예술가의 독자성, 에고, 경계가 협업이라는 망 속에서 재배치된다. 협업의 경험으로 작가는 자기 자신을 언급할 수 있게 된다. 둘째는 중단 없는 관계의 유지, 상이한 작가 간 긴장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지적했듯, 예술은 단지 미적 감각이나 문제의식의 세계가 아니라 사회정치적인 장으로서 기능한다. 이 때문에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들기 위해 협업을 할 때 제도가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 또한 작가 자신에게 협업이 가장 타당해지는 지점이 생겨난다. 세 번째는 관람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협업은 매우 복잡한 두 세계의 충돌을 모든 물질과 맥락 속에 담아내는데, 관객은 이들의 관계망을 읽고 재구성해 보는 참여자가 된다. 협업은 관객에게 작품 속 관계와 틈새, 충돌, 여백을 감지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모두 ‘직관으로서의 상상력’을 길러내는 방법이다.

나는 2024년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의 장애·비장애 공동창작워크숍 ‘위험 포럼’으로부터 《위험재앙! 그것이 바로 우리다》라는 전시로 수렴되는 프로젝트를 기획한 적이 있다. 워크숍 과정을 진행하던 작가들은 서로를 배려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전시가 시작되니 장애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현실의 한계에 부딪혔다. 시간을 맞추기 어려운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는 작가를 기다리기 위해서 그와 협업하는 다른 작가가 생업과 작업의 균형을 아찔하게 지키는 자신의 일상을 프로젝트에 헌납해야만 했고, 장애가 있어서 경험했던 도움이나 배려의 순간을 버릇처럼 용인하는 경우는 눈에 자주 띄었다. 워크숍에서 효율을 배제하고 가치에 관해 이야기 나누던 작가들은, 결과를 보여주어야 하는 전시 준비 과정에서는 효율을 높이기 위해 애썼다.

우리에게는 자기 세계에 확신을 가지고 하고 싶은 대로 모든 것을 발산하는 장애예술가가 필요하다. 그것은 장애예술가의 태도라기보다, 장애예술가의 활동을 마음으로 응원하고 작업이라는 곤란함과 난처함을 함께 겪을 준비가 된, 혹은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지금의 현장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미술적 격차 없이 동등하게 협업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직관적 상상력으로 그 한계 또한 돌파할 수 있다. 비가족의 관계, 비경제의 계약, 비물질 생산의 윤리적 모델 등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에게는 서로의 삶을, 서로의 사유를, 서로의 선택을 상상할 수 있는 직관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단지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시장 논리로서의 협업이 아니라, 협업 관계가 갖는 ‘신뢰의 형식’이 그 예술의 핵심을 드러내는 것임을 잊지 않기로 하자.

  • 붉은색 벽면에 인물화와 서커스를 연상시키는 그림들이 걸린 전시 공간에서 네 사람이 나란히 앉아 얼굴을 보며 대화 나누고 있다. 화면 하단에는 자막으로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부산 오픈스페이스 배에서 진행했던 《아토믹 보이: 지상 최근의 쇼》 작가와의 대화 영상 캡처.
    출처: 유튜브 채널 ‘openspacebae’

  • 작업실의 커다란 테이블을 마주하고 작업 중인 두 사람. 김현우 작가는 천을 손에 쥔 채 그림 재료를 닦고 있고, 박철우 작가는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붓, 물감, 종이컵 등 여러 미술 도구들이 흩어져 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아트켈뢰 갈레리아(Átkelő Galéria)에서 열린 《상호장군 이야기》 전시를 준비하는 김현우 작가와 박철호 작가

이지혜

이지혜

문화예술경영, 미술비평, 문화매개를 전공했다. 현재 문화매개실천연구소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시공간과 공동창작 스튜디오가 함께 있는 ‘오엠지’ 개관을 준비 중이다.
contact.ciprl21@gmail.com

사진 제공. 필자

2025년 10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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